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2세의 형의 아들이라는 서술 외에는 불명 — 시황의 아우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사망 -206년 — 한 원년(-206) — 항우가 함양을 도륙하며 죽임(項羽本紀: 「殺秦降王子嬰」). 달은 원문에 없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7년 | 함양 | 진왕(재위 46일) | 기록 |
| -206년 | 지도 | 진왕(재위 46일)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8년 | 기타 | (기록 없음) | 불명 |
| -207~-206년 | 진 | 진왕(재위 46일) | 기록 |
조고가 2세를 죽이고 세운 진왕이 되나, 재계 중 직접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한다.
정사 진시황본기: 조고가 2세의 형의 아들 공자 영을 진왕으로 세웠다. 5일 재계 중 영이 두 아들과 의논해 조고가 부르러 오자 재궁에서 찔러 죽이고 조고의 삼족을 함양에서 본보기로 처형했다.
출전: 史記 卷006 「立二世之兄子公子嬰為秦王」 / 史記 卷006 「子嬰遂刺殺高於齋宮」
패공이 무관을 넘어 패상에 이르자 목에 끈을 걸고 흰 수레에 옥새를 받들어 지도 곁에서 항복한다.
정사 진시황본기: 자영이 진왕이 된 지 46일 만에 초 장군 패공이 무관으로 들어와 패상에 이르러 항복을 약속하게 했다. 자영은 목에 끈을 걸고 흰 말 흰 수레로 천자의 옥새와 부절을 받들어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출전: 史記 卷006 「子嬰為秦王四十六日」 / 史記 卷006 「子嬰即系頸以組白馬素車奉天子璽符降軹道旁」
한 달 남짓 뒤 제후군이 이르자 항우가 자영과 진 공자·종족을 죽인다.
정사 진시황본기: 달이 넘어 제후군이 이르자 항적이 종장이 되어 자영과 진의 공자·종족을 죽였다. 항우본기는 항우가 서쪽으로 함양을 도륙하고 항복한 진왕 자영을 죽였다고 기록한다. 고조본기에서 한왕이 이를 죄 5로 꼽는다.
관련: 함양 입성과 진 멸망
출전: 史記 卷006 「項籍為從長殺子嬰及秦諸公子宗族」 / 史記 卷008 「又彊殺秦降王子嬰罪五」
정사 고조본기·통감: 패공은 장량의 계책으로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달래는 한편 무관을 기습해 깨고, 요관 앞 산 위에 깃발을 늘어놓는 의병을 세운 뒤 남전 남쪽과 북쪽에서 진군을 크게 깨뜨렸다. 한 원년 10월 패공의 군이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진왕 자영이 목에 끈을 걸고 흰 수레, 흰 말로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통감은 8월 패공이 수만 명을 이끌고 무관을 쳐 도륙했다고 적는다. 진 쪽 병력 수는 원문에 없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진왕으로 서 있던 46일간 군사적 성과가 없고 패상에서 항복했다(진시황본기).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 없음. |
| 지력 | 63 | 조고가 자신을 해칠 것을 알아 아들 둘과 모의해 재계 중 조고를 직접 찔러 죽였다(진시황본기). |
| 정치 | 50 | 왕으로 서 석 달도 안 되어 정사를 펼칠 시간이 없었다. 조고 일족을 삼족에 이르게 한 것이 유일한 정치 행위다(진시황본기). |
| 매력 | 59 | 「仁儉」하다는 평으로 추대되었으나 「孤立無親」이었다는 논평이 있다(진시황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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