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함(章邯)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진출생 생년 불명사망 -205년기록 연도 5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진의 소부).

사망 -205년 — 한 2년(-205) 6월경 — 한이 폐구에 물을 대 항복받자 자살(高祖本紀: 「廢丘降章邯自殺」). 서기 환산은 연도 단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여산진 소부(장군)기록
-208년정도진 소부(장군)기록
-207년극원진 소부(장군)기록
-206년폐구옹왕(폐구 도읍)기록
-205년폐구옹왕(폐구 도읍)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7년진진 소부(장군)기록
-206~-205년초옹왕(폐구 도읍)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진 소부(장군) · 대승

진 소부로서 여산의 도형수와 노비를 풀어 초군을 맞서 깬다.

정사 진섭세가: 진의 소부 장함이 여산 도형수·노비의 자식을 풀어 모두 징발해 초 대군을 쳐서 모두 깼다. 주문이 실패해 달아나다 자살했다.

출전: 史記 卷048 「秦令少府章邯免酈山徒人奴產子生悉發以擊楚大軍盡敗之」 / 史記 卷048 「周文自剄」

-208년 · 진 소부(장군) · 대승

정도에서 야습으로 항량을 죽이고, 이어 황하를 건너 조를 크게 깨 거록을 에워싼다.

정사 항우본기: 진이 병력을 장함에게 더해 정도에서 초군을 깨 항량을 죽였다. 장함은 초 땅이 걱정할 만하지 않다고 보고 황하를 건너 조를 크게 깼고, 왕리·섭간에게 거록을 에워싸게 하고 자신은 남쪽에서 용도로 군량을 대었다.

관련: 정도 전투

출전: 史記 卷007 「秦果悉起兵益章邯擊楚軍大破之定陶項梁死」 / 史記 卷007 「章邯令王離涉閒圍鉅鹿」

-207년 · 진 소부(장군) · 항복

극원에서 항우와 대치하다 조고의 의심을 받고, 환수 남쪽 은허에서 항우에게 항복한다.

정사 항우본기: 장함이 극원에, 항우가 장남에 군을 두고 대치했다. 2세가 질책하자 장함은 두려워했고 진여의 서신을 받은 뒤 항우와 환수 남쪽 은허에서 맹세하고 눈물을 흘리며 조고의 일을 말했다. 항우는 장함을 옹왕으로 세워 초군 안에 두었다.

관련: 거록 전투

출전: 史記 卷007 「章邯軍棘原項羽軍漳南相持未戰」 / 史記 卷007 「期洹水南殷虛上」 / 史記 卷007 「項羽乃立章邯為雍王置楚軍中」

-206년 · 옹왕(폐구 도읍)

항우가 3분한 관중에서 옹왕으로 봉해져 폐구에 도읍한다.

정사 항우본기: 항우가 관중을 셋으로 나누어 장함을 옹왕으로 삼아 함양 서쪽을 다스리게 하고 폐구에 도읍하게 했다.

출전: 史記 卷007 「章邯為雍王王咸陽以西都廢邱」

-206년 · 옹왕(폐구 도읍) · 패배

한왕이 고도에서 습격하자 진창에서 맞섰으나 패해 호치를 거쳐 폐구로 물러난다.

정사 고조본기: 8월 한왕이 한신의 계로 장함을 습격했다. 장함이 진창에서 맞섰으나 옹병이 패했고, 호치에서 다시 싸웠으나 패해 폐구로 달아났다.

관련: 진창 암도

출전: 史記 卷008 「邯迎擊漢陳倉雍兵敗還走」 / 史記 卷008 「止戰好畤又復敗走廢丘」

-205년 · 옹왕(폐구 도읍) · 전사

폐구가 물에 잠겨 항복하고 장함은 자살한다.

정사 고조본기: 한왕이 물을 끌어 폐구를 잠기게 하자 폐구가 항복했고 장함은 자살했다. 폐구는 괴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련: 장한 폐구 포위와 자결

출전: 史記 卷008 「引水灌廢丘廢丘降章邯自殺」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8년 · 동아 전투

정사 항우본기·전담열전·자치통감: 진의 장함이 임제에서 제·위군을 깨고 제왕 전담을 죽인 뒤, 동아로 달아난 전영을 추격해 에워쌌다. 항량이 항보를 치다가 전영이 위급하다는 소식에 군사를 돌려 제의 전영·사마 용저의 군과 함께 동아 아래에서 장함군을 크게 깨뜨렸고 장함은 서쪽으로 달아났다. 전영은 곧 군을 이끌고 제로 돌아가 제왕 가를 쫓아냈고, 항량은 홀로 진군을 쫓아 성양을 도륙하고 복양 동쪽에서 다시 장함과 싸워 이겼다. 항량은 이후 연이은 승리로 교만해졌고 정도에서 크게 패해 죽는다. 병력 수는 원문에 없다.

-206년 · 함곡관 입관

정사 항우본기·고조본기: 항우는 장한을 항복받은 뒤 신안에서 진 항졸 20여만을 묻고 약속을 어긴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었다는 말에 함곡관에 이르렀으나 관에 병사가 지켜 들어가지 못했다. 고조본기는 유방이 「관을 막고 제후를 들이지 말라」는 말을 따라 관을 지키게 했다고 적고, 항우가 11월 중 크게 노해 당양군(경포) 등으로 관을 깼으며 12월 중 희에 이르렀다고 적는다. 병력은 월표가 40여만(제후군), 한서가 30여만이라 적어 다르다. 항우는 이어 희수 서쪽에 진을 쳤고 곧 홍문 연회로 이어진다. 연도는 한 원년(11월)에 따라 -206으로 두었다(대기열 표의 -207과 다름).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92여산 도형수를 풀어 만든 군으로 주문을 깨고, 정도에서 항량을 죽였으며, 거록에서 왕리를 시켜 조를 포위했다(진섭세가·항우본기).
무력76직접 선봉에 서는 장면은 적다. 싸움은 군을 지휘해 이기는 쪽이다(항우본기).
지력73야간 함매 기습으로 항량을 쳤고 병력의 부족도 여산 도형수 징발로 풀었다. 다만 항우와의 대치에서 조고에게 몰려 항복한다(항우본기).
정치50진의 소부로서 군 징발 건의를 맡았고 후에 옹왕으로 봉해져 폐구에 도읍한다(항우본기). 정치적 사업의 기록은 적다.
매력50항복 뒤에도 진졸 20만이 새안에서 묻혔고, 폐구에서 한군에게 수공당해 자살해 부하들을 끝까지 이끌었다는 기록은 없다(항우본기·고조본기).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함의 이동 경로

진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