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진 장수 왕전의 손자로 알려진 인물 — 이 사실은 본문에서 확인하지 못함)
사망 몰년 불명 — 사망 연도 불명 — 거록에서 항우에게 사로잡힌 뒤의 소식은 기록이 없다(항우본기: 「虜王離」)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8년 | 거록 | (진 장군 — 연도별 직위 불명) | 기록 |
| -207년 | 거록 | 진 장군(거록 포위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년 | 진 | (진 장군 — 연도별 직위 불명) | 불명 |
| -208년 | 진 | (진 장군 — 연도별 직위 불명) | 기록 |
| -207년 | 진 | 진 장군(거록 포위군) | 기록 |
| -206~-195년 | 기타 | (기록 없음) | 불명 |
장함의 지시로 섭간과 거록을 에워싸 조왕 헐과 장이를 가두고 급히 친다.
정사 항우본기: 장함이 정도에서 항량을 깬 뒤 황하를 건너 조를 크게 깼다. 조왕 헐·진여·장이가 거록성으로 달아나자 장함은 왕리·섭간에게 거록을 에워싸게 하고 자신은 남쪽에서 용도로 군량을 대었다. 장이열전: 왕리는 병력과 군량이 많아 급히 거록을 쳤다.
관련: 거록 전투
출전: 史記 卷007 「章邯令王離涉閒圍鉅鹿」 / 史記 卷089 「王離兵食多急攻鉅鹿」
항우가 거록에서 아홉 번 싸워 용도를 끊고 크게 깨 왕리를 사로잡는다.
정사 항우본기: 항우는 강을 건너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며 3일 양식만 지니고 왕리를 에워싸 아홉 번 싸웠고 용도를 끊어 크게 깨 소각을 베고 왕리를 사로잡았다. 섭간은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관련: 거록 전투
출전: 史記 卷007 「九戰絕其甬道大破之殺蘇角虜王離」 / 史記 卷007 「涉閒不降楚自燒殺」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0 | 장함의 용도 보급을 받으며 거록의 조군을 급히 쳤으나 항우에게 군이 무너지고 사로잡혔다(항우본기). |
| 무력 | 61 | 개인 무용 서술 없음. |
| 지력 | 50 | 지모 서술 없음. 보급선을 항우에게 끊겨 군량이 떨어졌다(진여열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치 기록 없음. |
| 매력 | 50 | 군대 규모 외에 인품 서술이 없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왕리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