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영(夏侯嬰)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172년기록 연도 8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는 기록에 없다. 패 사람이고 현 마구간 수레몰이였다고만 나온다.

사망 -172년 — 열전: 「代王之來」(기원전 180~179) 뒤 문제를 섬기다 「八歲卒」 — 문제 8년(기원전 172) 전후로 계산한 추정. 시호는 문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패현현령사 → 패공의 태복기록
-208년옹구현령사 → 패공의 태복추정
-207년개봉태복·등공(滕公)추정
-206년한중(남정)소평후·태복기록
-205년하읍소평후·태복기록
-204년형양소평후·태복기록
-202년노태복기록
-201년진(陳)태복·여음후기록
-200년평성태복·여음후기록
-199년구주태복·여음후추정
-196년장안태복·여음후추정
-195년장안태복·여음후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한현령사 → 패공의 태복기록
-208년한현령사 → 패공의 태복추정
-207년한태복·등공(滕公)추정
-206~-204년한소평후·태복기록
-203년한소평후·태복불명
-202년한태복기록
-201~-200년한태복·여음후기록
-199년한태복·여음후추정
-198~-197년한태복·여음후불명
-196년한태복·여음후추정
-195년한태복·여음후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현령사 → 패공의 태복

패현이 항복한 날 유방이 패공이 되자 칠대부 작위와 태복 직을 받는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하영은 패 사람으로 현 마구간의 수레몰이였고 유방과 친했다. 유방이 패를 치려 할 때 현령사로서 사자가 되었고, 패가 항복한 날 유방이 패공이 되어 하영에게 칠대부 작위를 주고 태복으로 삼았다.

출전: 史記 卷095 「夏侯嬰沛人也為沛廄司御」 / 史記 卷095 「嬰時以縣令史為高祖使」 / 史記 卷095 「高祖為沛公賜嬰爵七大夫以為太僕」

-208년 · 현령사 → 패공의 태복

호릉에서 소하와 함께 사수감 평의 항복을 받아내고, 탕 동쪽·제양·호유·옹구에서 이유의 군을 깨는 전투마다 수레를 몰아 공을 세운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호릉을 칠 때 하영이 소하와 사수감 평을 항복시켰고, 탕 동쪽에서 진군을 치고 제양을 공격하며 호유를 내리고 옹구 아래에서 이유의 군을 깼다. 병거를 몰아 빨리 공격해 싸움에서 공이 있어 오대부, 집백 작위를 받았다.

출전: 史記 卷095 「從攻胡陵嬰與蕭何降泗水監平」 / 史記 卷095 「從擊秦軍碭東攻濟陽下戶牖破李由軍雍丘下」 / 史記 卷095 「以兵車趣攻戰疾賜爵執帛」

-208년 · 현령사 → 패공의 태복

태복으로 수레를 몰고 장함의 군을 동아·복양 아래에서 깨고 집규 작위를 받는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늘 태복으로 수레를 받들어 장함의 군을 동아와 복양 아래에서 쳤고, 병거로 빨리 공격해 이를 깨뜨려 집규 작위를 받았다.

관련: 동아 전투

출전: 史記 卷095 「常以太僕奉車從擊章邯軍東阿濮陽下」 / 史記 卷095 「賜爵執珪」

-207년 · 태복·등공(滕公)

개봉에서 조분을, 곡우에서 양웅을 깨고, 낙양 동쪽에서 진군을 친 공으로 등공(滕公)이 된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개봉에서 조분의 군을, 곡우에서 양웅의 군을 쳤고 포로 68명, 항복한 졸 850명과 인 한 궤를 얻었다. 이어 낙양 동쪽에서 진군을 쳐 공을 세워 봉작이 바뀌어 등공이 되었다.

출전: 史記 卷095 「復常奉車從擊趙賁軍開封楊熊軍曲遇」 / 史記 卷095 「賜爵封轉為滕公」

-207년 · 태복·등공(滕公)

남양을 공격하고 남전·지양에서 싸우며 패상에 이른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이어 수레를 받들어 남양을 공격했고 남전과 지양에서 싸워 패상에 이르렀다.

관련: 무관 입관

출전: 史記 卷095 「因復奉車從攻南陽戰於藍田芷陽」

-206년 · 소평후·태복

항우가 유방을 한왕으로 세우자 열후(소평후)에 오르고 태복으로 촉·한에 들어간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항우가 진을 멸하고 패공을 한왕으로 세우자 한왕이 하영에게 열후 작위와 소평후 호를 주고 다시 태복으로 삼아 촉·한에 따라 들어갔다.

출전: 史記 卷095 「漢王賜嬰爵列侯號昭平侯復為太僕從入蜀漢」

-205년 · 소평후·태복

팽성에서 패해 달아나는 한왕이 수레에 태운 효혜·노원을 몇 번이나 내던지려 하자 그때마다 다시 태워 풍까지 데려다 준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팽성에서 한군이 크게 패해 한왕이 달아나다 효혜와 노원을 만나 수레에 태웠다. 말이 지친 데다 추격이 뒤에 있어 한왕이 번번이 두 아이를 발로 차 버리려 했으나 하영이 번번이 다시 태웠고, 한왕이 열 번 남짓 베려 했지만 끝내 풍에 데려다 놓았다.

관련: 팽성 전투

출전: 史記 卷095 「至彭城項羽大破漢軍」 / 史記 卷095 「嬰常收竟載之徐行面雍樹乃馳」 / 史記 卷095 「而致孝惠魯元於豐」

-204년 · 소평후·태복

한왕이 형양에서 흩어진 군사를 모아 다시 일어서자 기양을 식읍으로 받는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한왕이 형양에 이르러 흩어진 병사를 거두어 다시 떨치자 하영에게 기양을 식읍으로 주었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95 「漢王既至滎陽收散兵復振賜嬰食祈陽」

-202년 · 태복

항적을 진까지 쫓아 초가 평정되자 노에 이르러 자씨를 더 받는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다시 수레를 받들어 항적을 진까지 쫓아가 끝내 초를 평정하고 노에 이르러 자씨 식읍을 더 받았다.

출전: 史記 卷095 「復常奉車從擊項籍追至陳卒定楚至魯益食茲氏」

-202년 · 태복

황제 즉위한 해 가을 연왕 장도가 반란을 일으키자 태복으로 토벌에 따른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한왕이 황제가 되고 그 가을 연왕 장도가 반란하자 하영이 태복으로 장도를 치는 데 따랐다.

관련: 연왕 장도 토벌

출전: 史記 卷095 「漢王立為帝其秋燕王臧荼反嬰以太僕從擊荼」

-201년 · 태복·여음후

이듬해 진에서 초왕 신(한신)을 잡는 일에 따르고, 여음을 식읍으로 받아 부절을 나눈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이듬해 진에 이르러 초왕 한신을 잡았고, 식읍을 여음으로 바꾸고 부절을 나누어 대대로 끊지 않게 했다.

관련: 운몽 한신 체포

출전: 史記 卷095 「明年從至陳取楚王信」 / 史記 卷095 「更食汝陰剖符世世勿絕」

-200년 · 태복·여음후

대를 치다 평성 백등에서 흉노에 7일 포위되자 고제가 달아나려 할 때 천천히 수레를 몰고 쇠뇌를 바깥으로 겨누게 해 빠져나온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대를 치고 무천·운중에 이르렀고 진양 옆에서 한신의 호기병을 크게 깼다. 평성까지 쫓다가 흉노에 포위돼 7일을 통하지 못했다. 고제가 틈이 열리자 달리려 했으나 하영이 굳이 천천히 몰고 쇠뇌를 시위 가득 당겨 밖으로 향하게 해 마침내 벗어났다. 이 공으로 세양 천 호를 더 받았다.

관련: 평성 백등산 포위

출전: 史記 卷095 「平城為胡所圍七日不得通」 / 史記 卷095 「高帝出欲馳嬰固徐行弩皆持滿外向卒得脫」 / 史記 卷095 「益食嬰細陽千戶」

-199년 · 태복·여음후

구주 북쪽과 평성 남쪽에서 흉노 기병을 치며 세 번 진을 함락한 공이 가장 많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다시 태복으로 구주 북쪽에서 흉노 기병을 크게 깼고, 평성 남쪽에서 흉노 기병을 쳐 세 번 진을 함락하여 공이 많아 빼앗은 읍 5백 호를 받았다.

출전: 史記 卷095 「復以太僕從擊胡騎句注北大破之」 / 史記 卷095 「以太僕擊胡騎平城南三陷陳功為多」

-196년 · 태복·여음후

진희·경포의 군을 쳐 진을 함락하고 적을 물리쳐, 식읍이 여음 6천9백 호로 정해진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태복으로 진희와 경포의 군을 쳐 진을 함락하고 적을 물리쳐 천 호를 더 받았고, 여음 6천9백 호를 식읍으로 정했다.

관련: 영포 토벌

출전: 史記 卷095 「以太僕擊陳豨黥布軍陷陳卻敵」 / 史記 卷095 「定食汝陰六千九百戶」

-195년 · 태복·여음후

고조가 죽을 때까지 태복으로 있고, 효혜제·고후에게는 하읍 사이에서 두 아이를 구한 일로 현 북쪽 제1 저택 「近我」를 받는다.

정사 번역등관열전: 하영은 유방이 패에서 일어난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태복이었다. 효혜제와 고후가 하읍 사이에서 효혜·노원을 구해 준 일을 고마워해 현 북쪽 제일가는 저택을 주며 「나와 가깝게」라 했다.

출전: 史記 卷095 「嬰自上初起沛常為太僕竟高祖崩」 / 史記 卷095 「孝惠帝及高后德嬰之脫孝惠魯元於下邑之閒也」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6년 · 홍문 연회

정사 항우본기: 항우는 함곡관을 깨고 희수 서쪽에 이르렀다.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패공이 관중에서 왕이 되려 한다고 고하자 항우가 격분해 다음 날 패공 군을 치려 했다. 당시 항우의 군은 40만으로 신풍 홍문에, 패공의 군은 10만으로 패상에 있었다(두 군영 거리 40리). 항백이 밤에 장량을 구하려 달려와 패공에게 알리고, 패공은 다음 날 백여 기를 이끌고 홍문에 와 사과했다. 연회에서 범증이 옥결을 세 번 들어 신호하고 항장이 칼춤을 췄으나 항백이 막았고, 번쾌가 방패를 들고 뛰어들어 항우를 꾸짖었다. 패공은 변소를 핑계로 빠져나와 번쾌·하후영·근강·기신과 걸어서 여산 아래 지양 샛길로 패상으로 돌아갔다. 전투는 일어나지 않은 정치적 위기였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1군을 이끈 기록은 적고 병거를 모는 태복으로 전투마다 따랐다(번역등관열전).
무력71창에 수백 대를 맞고도 유방을 감옥에서 증언해 구한 일, 평성 포위에서 침착하게 수레를 몬 일 등(번역등관열전). 직접 무공 서술은 적다.
지력60평성에서 서두르는 고제를 말리고 서행해 위기를 벗었다(번역등관열전).
정치56실무 관직 기록은 태복뿐이다. 문제를 세울 때 청궁(廢少帝) 일을 맡았다(번역등관열전).
매력91유방과의 오랜 친분, 효혜제·고후가 저택을 주며 「近我」라 한 일(번역등관열전). 수치는 만들어 넣은 값.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하후영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