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蕭何)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193년기록 연도 8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사기』『한서』에 나이 표기 없음)

사망 -193년 — 효혜제 2년(기원전 193) 상국 재직 중 사망, 시호 문종후 — 「孝惠二年相國何卒諡為文終侯」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패현패현 주리연(진의 현리→유방 세력)기록
-206년함양한왕 승상기록
-205년역양한왕 승상기록
-204년역양한왕 승상기록
-203년역양한왕 승상추정
-200년장안승상·찬후(한 제국)추정
-199년장안승상·찬후(한 제국)기록
-198년장안승상·찬후(한 제국)추정
-197년장안승상·찬후(한 제국)추정
-196년장안승상→상국기록
-195년장안상국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한패현 주리연(진의 현리→유방 세력)기록
-208~-207년한패공 군의 승독(丞督)불명
-206~-204년한한왕 승상기록
-203년한한왕 승상추정
-202년한승상·찬후기록
-201년한승상·찬후(한 제국)불명
-200년한승상·찬후(한 제국)추정
-199년한승상·찬후(한 제국)기록
-198~-197년한승상·찬후(한 제국)추정
-196년한승상→상국기록
-195년한상국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패현 주리연(진의 현리→유방 세력)

진승이 일어나자 패현 현령이 호응하려 하고, 주리 소하가 조참과 함께 유방을 불러들이도록 권한다.

정사 고조본기: 진 이세 원년 가을 진승이 기에서 일어나 왕이 되자 패 현령이 호응하려 했다. 소하·조참이 현령에게 도망 나간 자들을 불러 무리를 모으자고 권했고 번쾌가 유계를 불러왔다.

출전: 史記 卷008 「掾主吏蕭何曹參乃曰君為秦吏今欲背之率沛子弟恐不聽」 / 史記 卷008 「乃令樊噲召劉季」

-206년 · 한왕 승상

유방이 함양에 들어서자 장수들이 금백 창고로 달릴 때 홀로 진의 승상·어사 율령 도서를 거둔다.

정사 소상국세가: 패공이 함양에 이르자 장수들이 금백 재물 창고로 다투어 달려갔으나 소하만 먼저 들어가 진 승상·어사의 율령·도서를 거두어 보관했다. 한왕이 천하의 요새·호구·강약·민간 고충을 알게 된 것은 소하가 진의 도서를 얻은 덕이다.

관련: 함양 입성과 진 멸망

출전: 史記 卷053 「何獨先入收秦丞相御史律令圖書藏之」 / 史記 卷053 「漢王所以具知天下阸塞戶口多少彊弱之處民所疾苦者以何具得秦圖書也」

-206년 · 한왕 승상

항우가 유방을 한왕으로 봉해 분노한 한왕에게 한중 왕 노릇을 받아들이도록 간하고 승상이 된다.

정사 한서 소하전: 한왕이 항우를 치려 하자 소하가 "한중에서 왕 노릇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라며 한중에서 백성을 기르고 현인을 모아 삼진을 평정하자고 간했고, 한왕이 받아들여 나라로 가며 소하를 승상으로 삼았다.

관련: 함양 입성과 진 멸망

출전: 漢書 卷039 「雖王漢中之惡不猶愈於死乎」 / 漢書 卷039 「乃遂就國以何爲丞相」

-206년 · 한왕 승상

한신이 달아나자 보고도 올리지 않고 직접 쫓아가 데려오고, 한왕에게 한신을 대장군으로 쓰라고 권한다.

정사 회음후열전: 소하가 한신이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보고할 겨를 없이 스스로 뒤쫓았고, 한왕이 "달아난 이유"를 묻자 "신은 달아난 자를 쫓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소상국세가: 소하가 한신을 추천하자 한왕이 대장군으로 삼았다.

출전: 史記 卷092 「何聞信亡不及以聞自追之」 / 史記 卷092 「臣不敢亡也臣追亡者」 / 史記 卷053 「何進言韓信漢王以信為大將軍」

-205년 · 한왕 승상

한왕이 동쪽 제후와 초를 치러 나가자 소하가 관중을 지키며 태자를 모시고 역양에서 법령·종묘·사직·궁실을 세우고 병사와 군량을 보낸다.

정사 소상국세가: 한 2년 한왕이 제후와 초를 칠 때 소하가 관중을 지키고 태자를 모시며 역양을 다스렸다. 법령·약속을 만들고 종묘·사직·궁실·현읍을 세웠으며, 호구를 헤아려 조운으로 군량을 대고 한왕이 군을 잃을 때마다 관중 병사를 일으켜 빈자리를 메웠다.

출전: 史記 卷053 「漢二年漢王與諸侯擊楚何守關中侍太子治櫟陽」 / 史記 卷053 「何常興關中卒輒補缺」

-205년 · 한왕 승상

팽성에서 진 한군이 형양에 모이자 소하가 관중의 아직 병적에 오르지 않은 노약자를 보내 군세를 다시 떨치게 한다.

정사 항우본기: 형양에 패군이 모두 모이고 소하도 관중의 아직 병적에 오르지 않은 노약자를 형양으로 보내 군이 다시 크게 떨쳤다.

출전: 史記 卷007 「蕭何亦發關中老弱未傅悉詣滎陽復大振」

-204년 · 한왕 승상

한왕이 경·삭 사이에서 초와 대치하며 자주 소하를 위로하자, 포생의 말대로 자손·형제를 군영에 보내 의심을 푼다.

정사 소상국세가: 한 3년 한왕이 항우와 경·삭 사이에서 대치할 때 자주 사자를 보내 승상을 위로하자, 포생이 의심의 뜻이 있다며 자손·형제로 병역 가능한 자를 모두 군소로 보내라 했고 소하가 따르니 한왕이 크게 기뻐했다.

출전: 史記 卷053 「漢三年漢王與項羽相距京索之間上數使使勞苦丞相」 / 史記 卷053 「於是何從其計漢王大說」

-202년 · 승상·찬후 · 논공 제일

항우를 죽이고 천하를 평정한 뒤 공을 따질 때 소하를 으뜸으로 삼아 찬후에 봉하고, 칼과 신을 신고 전에 오르며 종종걸음을 하지 않는 특권을 준다.

정사 소상국세가: 한 5년 항우가 죽고 논공행봉에서 고조가 소하의 공이 가장 크다 하여 찬후로 봉했다. 공신들이 "한 번도 땀 흘린 싸움이 없다"고 하자 고조가 사냥개와 사냥꾼의 비유를 들었고, 관내후 악군이 "만세의 공"이라 진언하자 소하를 제일로 하고 대검리상전·입조불추를 주었다.

출전: 史記 卷053 「漢五年既殺項羽定天下論功行封」 / 史記 卷053 「高祖以蕭何功最盛封為酇侯」 / 史記 卷053 「發蹤指示獸處者人也」 / 史記 卷053 「賜帶劍履上殿入朝不趨」

-199년 · 승상·찬후(한 제국)

장안에서 미앙궁을 지어 동궐·북궐·전전·무고·태창을 세우고, 호화롭다고 화낸 고조에게 천자의 위엄을 근거로 답한다.

정사 고조본기: 소 승상이 미앙궁을 지어 동궐·북궐·전전·무고·태창을 세웠다. 돌아온 고조가 궁궐이 너무 웅장하다며 화내자 소하가 "천자는 사해를 집으로 삼으니 장려하지 않으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고 답해 고조가 기뻐했다. (고조본기는 8년 기사 뒤, 한서 고제기는 8년 조에 둔다.)

출전: 史記 卷008 「蕭丞相營作未央宮立東闕北闕前殿武庫太倉」 / 史記 卷008 「非壯麗無以重威」 / 漢書 卷001下 「蕭何治未央宮立東闕北闕前殿武庫大倉」

-196년 · 승상→상국 · 한신 주살 가담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고 한신이 관중에서 모반하려 하자 여후가 소하의 계책을 써 한신을 주살하고, 고조가 소하를 상국으로 올려 5천 호를 더하고 호위 500명을 둔다. 소하는 소평의 말대로 봉읍을 사양하고 가산을 군에 보탠다.

정사 소상국세가: 한 11년 진희가 반란을 일으켜 고조가 친정했고 회음후가 관중에서 모반하려 하자 여후가 소하의 계책으로 회음후를 주살했다. 고조가 소하를 상국으로 삼아 5천 호를 더하고 도위 한 명에 사졸 500명을 상국 호위로 두자, 소평이 "의심하는 뜻"이라 했고 소하가 봉읍을 사양하고 가산을 군에 보태니 고조가 크게 기뻐했다.

출전: 史記 卷053 「漢十一年陳豨反高祖自將至邯鄲」 / 史記 卷053 「呂后用蕭何計誅淮陰侯」 / 史記 卷053 「使使拜丞相何為相國益封五千戶」 / 史記 卷053 「悉以家私財佐軍則上心說」

-195년 · 상국

영포가 반란을 일으켜 고조가 친정하자 소하는 백성을 달래고 재산으로 군을 돕다가, 객의 말대로 땅을 싸게 사들여 명성을 낮춘다. 이어 상림원 빈 땅을 백성에게 내주자고 청했다가 정위에 하옥되고, 왕위위의 변호로 풀려난다.

정사 소상국세가: 한 12년 가을 경포가 반란을 일으켜 고조가 친정했다. 소하가 백성을 달래고 사재를 군에 보탰으며, 객이 "전지를 사들여 스스로 더럽히라"고 권해 따랐다. 고조가 귀환하자 백성이 소하의 토지 강매를 상서했고, 소하가 상림원의 공지를 백성에게 내주자고 청하자 고조가 크게 노해 정위에 가두었다. 왕 위위가 간해 고조가 사자를 보내 풀어 주었고 소하는 맨발로 들어가 사죄했다.

출전: 史記 卷053 「漢十二年秋黥布反上自將擊之」 / 史記 卷053 「君胡不多買田地賤貰貸以自汙」 / 史記 卷053 「乃下相國廷尉械繫之」 / 史記 卷053 「使使持節赦出相國」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6년 · 진창 암도

정사 고조본기·회음후열전: 한 원년 4월 항우의 봉으로 한왕이 된 유방이 파·촉·한중으로 들어가며 장량의 권유로 지나온 잔도를 불태웠다(항우가 동쪽을 칠 뜻이 없다는 표시). 남정에서 병사들이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노래하자 한신이 「항우가 공신을 왕으로 봉하고 대왕만 남정에 두었으니 좌천이다, 삼진은 격문으로 평정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사기 고조본기는 8월에 한왕이 한신의 계책으로 고도(故道)를 거쳐 돌아 나와 옹왕 장한을 습격했다고 적고(회음후열전도 8월 「舉兵東出陳倉定三秦」), 한서 고조기는 같은 일을 5월로 적는다. 장한은 진창에서 맞섰으나 옹 군이 패했고 호치에서 다시 크게 졌으며 폐구로 달아났다. 한왕은 옹 땅을 평정하고 함양까지 가서 폐구를 포위했다. 「明修棧道,暗度陳倉」라는 말은 원문에 없는 후대 표현이다.

-196년 · 영포 토벌

정사 경포열전·고조본기: 한 11년 팽월이 주살되자 회남왕 경포는 두려워 몰래 병력을 모았고, 중대부 분혁의 고변을 계기로 7월 반란을 일으켰다. 설공이 고조에게 경포의 상·중·하계를 말하며 하계(오와 하채를 취하고 월·장사로 물러남)를 쓸 것이라 했고, 경포는 형왕 유가를 부릉으로 쫓아 죽이고 병력을 빼앗아 회수를 건너 초를 쳤다. 초가 서·동 사이에서 3군으로 나뉘어 싸우다 한 군이 깨지자 둘이 흩어졌다. 경포는 서쪽으로 가서 12년 겨울 10월 기현 서쪽 회추에서 고조의 친정군과 마주쳤고, 고조는 용성에 보루를 쌓고 항적의 진 같은 경포의 진을 보며 싫어했다. 고조가 "왜 반란하는가" 묻자 경포는 "황제가 되고 싶을 뿐"이라 답했고 큰 싸움 끝에 경포가 패해 회수를 건너 백여 명과 강남으로 달아났다. 장사 애왕의 사자에게 속아 번양으로 갔다가 번양 사람에게 살해되었다. 병력 수는 원문에 없어 null로 둔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1관중에서 병사를 일으켜 전선의 빈자리를 메우고 군량을 끊기지 않게 댔다. 야전 지휘 기록은 없다(소상국세가).
무력50문묵으로 논하고 싸우지 않았다는 공신들의 말을 고조가 부정하지 않았다(소상국세가).
지력90진의 도서를 거둬 천하 형세를 한왕에게 알렸고, 한중 왕 노릇과 한신 기용을 권했다(소상국세가·한서 소하전).
정치98관중에서 법령·종묘·사직·궁실을 세우고 호구를 헤아려 조운을 댔으며, 공신 책봉에서 제일로 꼽혔다(소상국세가).
매력79관중 백성의 마음을 얻어 고조가 그 민심을 의심할 만큼이었다(소상국세가).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소하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