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창(周昌)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몰년 불명기록 연도 6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 진 때 사수군 졸사.

사망 몰년 불명 — 몰년 불명 — 『사기』에 「趙王果來…周昌因謝病不朝見三歲而死」(여후 때 조왕 여의 사후 3년)로만 적혀 있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패현유방의 직지(職志)기록
-198년한단조상(趙相)기록
-195년장안조상(趙相)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한유방의 직지(職志)기록
-208~-207년한유방의 직지(職志)불명
-206년한한 중위기록
-205년한한 중위불명
-204년한한 어사대부기록
-203~-202년한한 어사대부불명
-201년한한 어사대부기록
-200~-199년한한 어사대부불명
-198년한조상(趙相)기록
-197~-196년한조상(趙相)불명
-195년한조상(趙相)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유방의 직지(職志)

사촌 형 주가와 함께 사수군 졸사로 있다가 유방이 패에서 일어나자 따르며 직지가 된다.

정사 주창전: 고조가 패에서 일어나 사수 수·감을 깨자 주창·주가가 졸사에서 패공을 따랐고 주창은 직지가 되었다.

출전: 史記 卷096 「周昌周苛自卒史從沛公沛公以周昌為職志」

-206년 · 한 중위

유방이 한왕이 되자 중위가 된다.

정사 주창전: 한왕이 주창을 중위로 삼았다.

출전: 史記 卷096 「周苛為御史大夫周昌為中尉」

-204년 · 한 어사대부

형양에서 주가가 순국한 뒤 어사대부가 되어 항적 격파에 종군한다.

정사 주창전: 주가가 죽자 주창을 어사대부로 삼았고 항적을 깨는 데 종군했다. (주창전은 「漢王四年」으로 적는다.)

출전: 史記 卷096 「於是乃拜周昌為御史大夫常從擊破項籍」

-201년 · 한 어사대부

소하·조참 등과 함께 분음후에 봉해지고, 순국한 주가의 아들 주성은 고경후에 봉해진다.

정사 주창전: 6년 중에 소하·조참 등과 함께 주창을 분음후로 봉했고, 주가의 아들 주성은 아버지가 일에 죽었다 하여 고경후로 봉했다.

출전: 史記 卷096 「以六年中與蕭曹等俱封封周昌為汾陰侯」 / 史記 卷096 「周苛子周成以父死事封為高景侯」

-198년 · 조상(趙相)

조 땅의 상으로 옮겨 조왕 여의를 지킨다. 조요가 어사대부 후임으로 천거했다.

정사 주창전: 조요가 고조에게 여의를 위해 귀하고 강한 상을 두라며 어사대부 주창을 천거했고, 고조가 주창을 어사대부에서 조상으로 옮겼다.

출전: 史記 卷096 「於是徙御史大夫周昌為趙相」

-195년 · 조상(趙相)

고조가 척희의 아들 여의로 태자를 바꾸려 하자 조정에서 "기기"하며 강하게 반대해 고조를 웃게 만들고, 여후가 동상에서 듣고 절하며 사례한다.

정사 주창전: 고제가 태자를 폐하고 여의를 세우려 하자 대신들이 다퉜지만 못 이겼는데, 주창이 정에서 강하게 다투며 "신은 입으로 말하지 못하나 기기 불가함을 압니다"라 했고, 여후가 이를 엿듣고 무릎 꿇어 사례했다. (시기는 주창전에 월 없이 적혀 추정.)

출전: 史記 卷096 「陛下雖欲廢太子臣期期不奉詔」 / 史記 卷096 「微君太子幾廢」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197년 · 진희 반란

정사 고조본기·진희열전: 한 10년(-197) 조 상국 진희가 변경 병력을 쥐고 빈객을 모으자 조 상국 주창이 고조에게 변이 있을 거라 아뢰었고, 고조가 진희의 빈객과 재물을 조사하자 진희가 두려워 왕황·만구신과 몰래 통했다. 한 10년 7월 태상황이 죽어 불렀으나 진희는 병을 칭했고, 9월 왕황 등과 반해 스스로 대왕이 되어 조·대를 노략했다(고조본기는 8월 반란으로 적는다). 고조는 9월 직접 가서 한단에 이르러 진희가 남쪽 장수를 막지 못했다며 무능하다 평했다. 조 땅 장수에게 천금씩 걸어 왕황·만구신을 사들이려 했고 진희의 장수들은 금으로 매수되어 많이 항복했다. 11년 겨울 한군이 진희 장수 후창과 왕황을 곡역 아래서 베고 장춘을 요성에서 깼으며 태위 주발이 태원·대를 평정했다. 12월 고조가 동원을 공격해 한 달 남짓 성은 항복하지 않았고 항복한 뒤 욕한 군사는 베었다. 한 12년(-195) 겨울 번쾌의 군이 영구에서 진희를 쫓아 베었다. 한신(회음후)도 진희와 내통했다가 이 일로 주살되었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1중위·어사대부로 한 조정의 치안과 법무를 맡았다(주창전).
무력54"강력"하다고 평해졌으나 전투 기록은 적다(주창전).
지력평가 불가말을 더듬어 "기기"로 태자 폐립을 반대했을 뿐 책략 기록은 없다(주창전).
정치72조왕 여의의 상으로 왕을 지켜 여후의 소환을 거듭 막았다(주창전).
매력64소하·조참 등이 모두 낮추었고 여후까지 "그대가 아니면 태자가 폐해질 뻔했다"며 절했다(주창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주창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