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 주창의 사촌 형, 진 시대 사수군 졸사.
사망 -204년 — 한 3년(기원전 204) 6월 항우가 형양을 함락하자 사로잡혀 팽형 — 「項王怒烹周苛」(『사기』 주창전은 「漢王四年」으로 적어 연도가 갈림)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패현 | 사수군 졸사→유방의 객 | 기록 |
| -204년 | 형양 | 한 어사대부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년 | 한 | 사수군 졸사→유방의 객 | 기록 |
| -208~-207년 | 한 | 사수군 졸사→유방의 객 | 불명 |
| -206년 | 한 | 한 어사대부 | 기록 |
| -205년 | 한 | 한 어사대부 | 불명 |
| -204년 | 한 | 한 어사대부 | 기록 |
사촌 아우 주창과 함께 진의 사수군 졸사로 있다가 유방이 패에서 일어나 사수군 감을 깨자 객으로 따른다.
정사 주창전: 주창·주가는 진 때 사수군 졸사였고, 고조가 패에서 일어나 사수 수·감을 깨자 졸사에서 패공을 따랐다. 패공은 주창을 직지, 주가를 객으로 삼았다.
출전: 史記 卷096 「其從兄曰周苛秦時皆為泗水卒史」 / 史記 卷096 「沛公以周昌為職志周苛為客」
유방이 한왕이 되자 어사대부가 된다.
정사 주창전: 패공이 한왕이 되자 주가를 어사대부로, 주창을 중위로 삼았다.
출전: 史記 卷096 「沛公立為漢王以周苛為御史大夫周昌為中尉」
한왕이 형양을 빠져나가자 위표·종공과 형양을 지키며 반국의 왕 위표를 죽이고, 항우가 성을 깨 사로잡은 뒤 상장군 자리를 내걸자 꾸짖고 팽형당한다.
정사 항우본기: 한왕이 어사대부 주가·종공·위표에게 형양을 지키게 했다. 주가·종공이 반국의 왕과 지키기 어렵다며 위표를 죽였다. 초가 형양성을 함락하고 주가를 산 채로 잡아 상장군 자리를 내걸었으나 주가가 꾸짖자 항왕이 주가를 팽살했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7 「漢王使御史大夫周苛樅公魏豹守滎陽」 / 史記 卷007 「乃共殺魏豹」 / 史記 卷007 「為我將我以公為上將軍封三萬戶」 / 史記 卷007 「項王怒烹周苛」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1 | 어사대부로 형양성 수비를 맡았다(항우본기·주창전). |
| 무력 | 평가 불가 | 직접 싸운 기록은 없다. |
| 지력 | 54 | 반국의 왕(위표)이 성을 함께 지키기 어렵다고 보고 종공과 위표를 죽였다(항우본기). |
| 정치 | 56 | 어사대부로 한왕 조정을 맡았다(주창전). |
| 매력 | 58 | 항우가 상장군·3만 호를 내걸었으나 꾸짖고 거절했다(항우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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