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薄姬)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155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 오 사람 박씨와 위온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망 -155년 — 문제 2년(전 178)에 박태후라 칭했고, 경제 전 2년(-155)에 죽음. 범위(-209~-195) 밖이라 해별 칸은 -195까지만 둔다. 사망연도는 본문 「以孝景帝前二年崩」에서 환산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8년평양(위 도읍)위왕 위표의 후궁으로 들여짐기록
-203년성고한궁 직실(織室)→한왕의 후궁기록
-195년진양고조 사후 대왕 항(恒)의 모후 — 대 지역으로 이주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기타(오 출신 박씨 집 딸 — 아버지는 진 시기 위왕의 종가 여인 위온과 통해 박희를 낳음)불명
-208년위위왕 위표의 후궁으로 들여짐기록
-207~-205년위위왕 위표의 후궁으로 들여짐불명
-204년한한궁 직실(織室)→한왕의 후궁불명
-203년한한궁 직실(織室)→한왕의 후궁기록
-202~-196년한한궁 직실(織室)→한왕의 후궁불명
-195년한고조 사후 대왕 항(恒)의 모후 — 대 지역으로 이주기록

나온 사건·전투

-208년 · 위왕 위표의 후궁으로 들여짐

위표가 위왕이 되자 어머니 위온이 박희를 위궁에 들여보낸다.

정사 외척세가(박태후): 박희의 아버지는 오 사람 박씨, 어머니는 옛 위왕 종가의 여인 위온이다. 제후들이 진을 배반하고 위표가 위왕으로 서자 위온이 딸을 위궁에 들였다. 위표의 자립과 평양 도읍은 월표 9월 항에 있으나 박희가 들어간 달은 본문에 없다.

출전: 史記 卷049 「及諸侯畔秦魏豹立為魏王而魏媼內其女於魏宮」

-204년 · 한궁 직실(織室)→한왕의 후궁

허부가 박희의 상을 보고 천자를 낳을 상이라 하자 위표가 한을 배반하고 초와 화친하다 조참에게 사로잡히고, 박희는 직실로 보내진다.

정사 외척세가: 허부가 박희를 보고 「천자를 낳을 것」이라 하자 위표는 한을 배반해 중립을 지키다 초와 연합했다. 한이 조참 등을 보내 위왕 표를 사로잡고 그 나라를 군으로 만들었고, 박희는 직실(織室)로 보내졌다. 연대는 고조본기의 한 3년 위표 반란·진압(-204)에 맞춘 추정이다.

출전: 史記 卷049 「相薄姬云當生天子」 / 史記 卷049 「漢使曹參等擊虜魏王豹以其國為郡而薄姬輸織室」

-203년 · 한궁 직실(織室)→한왕의 후궁

한왕이 직실에서 본 박희를 후궁에 들였다가 성고 대에서 두 미인의 조롱을 듣고 불러 총애하여 아들(훗날 대왕)을 낳는다.

정사 외척세가: 한왕이 직실에서 박희를 보고 후궁에 들이게 했으나 1년 남짓 총애하지 않았다. 박희가 관부인·조자아와 「먼저 귀해지면 잊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두 사람이 먼저 총애받자, 한왕이 하남궁 성고대에서 두 미인이 박희의 약속을 비웃는 것을 듣고 가련히 여겨 박희를 불러 총애했다. 박희가 「창룡이 배를 감는 꿈을 꾸었다」고 하자 고제는 「귀한 징조다」라 했고 한 번 총애로 아들(대왕)을 낳았다. 이후 고조와는 드물게만 만났다. 낳은 해는 본문에 없어 한 3~4년(-204~-203)으로 추정한다.

출전: 史記 卷049 「漢王坐河南宮成皋臺此兩美人相與笑薄姬初時約」 / 史記 卷049 「高帝曰此貴徵也吾為女遂成之」 / 史記 卷049 「一幸生男是為代王」

-195년 · 고조 사후 대왕 항(恒)의 모후 — 대 지역으로 이주

고조가 죽자 후궁들이 모두 여태후에게 갇혔으나 드물게 만난 덕에 풀려나 아들을 따라 대로 가 대왕 태후가 된다.

정사 외척세가: 고조가 죽자 여태후가 척부인 등 총애받던 후궁을 모두 궁에 가두었으나, 박희는 드물게 만났기에 궁을 나와 아들을 따라 대로 가서 대왕 태후가 되었고 아우 박소가 함께 갔다. 대의 도읍은 진양(晉陽)이며(고조본기), 고조 사망은 12년(-195) 4월이다.

출전: 史記 卷049 「高祖崩諸御幸姬戚夫人之屬呂太后怒皆幽之不得出宮」 / 史記 卷049 「而薄姬以希見故得出從子之代為代王太后」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기록이 없다.
무력평가 불가기록이 없다.
지력50기록이 없다. 값은 추정이다.
정치50여태후 시기를 피해 아들을 따라 대로 갔고(외척세가), 뒤에 문제의 생모로 정치에 영향을 미쳤으나 이 범위 밖이다.
매력70관부인·조자아와의 약속, 한왕이 연민을 느꼈다는 기록(외척세가).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박희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