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접(周緤)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175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 패 사람이며 사인으로 유방을 따라 일어났다고만 나온다

사망 -175년 — 효문 5년(-175) 천수를 다하고 죽음, 시호 정후(貞侯). 범위(-209~-195) 밖이라 이 파일의 해별 칸은 -195까지만 둔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7년패상사인기록
-206년남정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기록
-204년양국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8년한사인 — 패에서 유방을 따라 일어남불명
-207년한사인기록
-206년한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기록
-205년한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불명
-204년한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기록
-203~-202년한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불명
-201~-196년한신무후(식읍 3,300호)불명
-195년한괴성후불명

나온 사건·전투

-207년 · 사인

사인으로 패에서 유방을 따라 일어나 늘 참승을 서며 패상에 이른다.

정사 부근괴성열전(주접): 주접은 패 사람이고 늘 고조의 참승(수레 오른쪽 호위)이었으며 사인으로 패에서 일어나 따랐다. 패상에 이르렀다. 패상 도착은 -207년이다.

출전: 史記 卷098 「常為高祖參乘以舍人從起沛」 / 史記 卷098 「至霸上」

-206년 · 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

서쪽으로 촉·한에 들어갔다가 삼진을 평정하고 지양에 식읍을 받는다.

정사 부근괴성열전(주접): 서쪽으로 촉·한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삼진을 평정하고 지양에 식읍을 받았다. 연대는 한 원년(-206)~2년 초로 추정한다.

출전: 史記 卷098 「西入蜀漢還定三秦食邑池陽」

-204년 · 사인·참승 — 한중, 삼진, 형양 전선

동쪽으로 용도를 끊고 평음을 건너 양국에서 회음후의 군을 만나 이해(利害)에도 끝내 임금 곁을 떠나지 않는다.

정사 부근괴성열전(주접): 동쪽으로 용도(甬道)를 끊고 따르다 평음을 건넜고, 양국에서 회음후(한신)의 군을 만났다. 군이 이롭다 불리하다 했으나 끝내 임금의 곁을 떠날 마음이 없었다. 서술 순서상 한 3년(-204) 전후로 추정한다.

출전: 史記 卷098 「東絕甬道從出度平陰遇淮陰侯兵襄國」 / 史記 卷098 「軍乍利乍不利終無離上心」

-201년 · 신무후(식읍 3,300호)

신무후에 봉해져 식읍 3,300호를 받는다.

정사 부근괴성열전(주접): 주접에게 신무후를 주고 식읍 3,300호를 주었다. 본전에 연대가 없어 공신 봉작(한 6년, -201)으로 추정한다. (같은 전의 근흡도 신무후라 본문 기록에 호칭이 겹친다.)

출전: 史記 卷098 「以緤為信武侯食邑三千三百户」

-197년 · 신무후(식읍 3,300호)

고조가 진희를 직접 치려 하자 울며 만류해 입전불추·살인불사의 은전을 받는다.

정사 부근괴성열전(주접): 고조가 진희를 직접 치려 하자 괴성후 주접이 「옛날 진은 천하를 치면서 직접 나서지 않았는데 지금 상께서 늘 직접 가시니 보낼 사람이 없어서입니까」라며 울었다. 고조는 「나를 사랑해서다」라며 전각 문에서 종종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을 죽여도 사형을 받지 않는 은전을 내렸다. 고조의 진희 친정은 한 10년(-197) 9월이다.

출전: 史記 卷098 「上欲自擊陳豨蒯成侯泣曰」 / 史記 卷098 「賜入殿門不趨殺人不死」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0참승·사인으로 수행한 기록만 있다.
무력평가 불가전공 기록이 없어 낮게 둔 추정값이다.
지력50지략 서술이 없다.
정치평가 불가정치 직무 기록은 없다.
매력72「操心堅正身不見疑」, 고조가 떠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사마천의 평(부근괴성열전). 고조 12년 괴성후에 봉해졌다.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주접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