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참(曹參)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190년기록 연도 1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

사망 -190년 — 혜제 5년(-190) 전후 — 상국으로 죽고 시호 의후. 연도는 세가 문장 「參為漢相國出入三年卒」에서 환산한 통설이며 범위(-195) 밖이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패현중연(패공 휘하)기록
-208년옹구집백·건성군→척공기록
-206년폐구건성후·장군기록
-205년평양(위 도읍)중위→가좌승상→우승상기록
-204년오중위→가좌승상→우승상기록
-203년임치중위→가좌승상→우승상기록
-196년기(蘄)제상국·평양후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한중연(패공 휘하)기록
-208년한집백·건성군→척공기록
-207년한집규기록
-206년한건성후·장군기록
-205~-203년한중위→가좌승상→우승상기록
-202~-201년한제상국·평양후기록
-200~-198년한제상국·평양후불명
-197~-196년한제상국·평양후기록
-195년한제상국·평양후불명

나온 사건·전투

-209년 · 중연(패공 휘하)

패현 옥연으로 있다가 패공이 처음 일어나자 중연으로 따른다.

정사 조상국세가: 조참은 패 사람으로 진 시기에 패의 옥연이었고 소하가 주리였다. 고조가 패공이 되어 처음 일어나자 조참이 중연으로 따랐다.

출전: 史記 卷054 「高祖為沛公而初起也參以中涓從」

-208년 · 집백·건성군→척공 · 대승

옹구에서 이유의 군을 깨고 이유를 죽이며, 항량이 죽은 뒤 회왕에게서 건성군에 봉해진다.

정사 조상국세가: 조참은 옹구를 구원하며 이유의 군을 깨고 이유를 죽였다. 장함이 항량을 격파해 죽인 뒤 초 회왕이 패공을 탕군장으로 삼아 탕군병을 거느리게 했고, 조참은 집백에 봉해져 건성군이라 불렸다.

출전: 史記 卷054 「擊李由軍破之殺李由」 / 史記 卷054 「楚懷王以沛公為碭郡長將碭郡兵」 / 史記 卷054 「於是乃封參為執帛號曰建成君」

-207년 · 집규 · 대승

성양 남쪽에서 왕리의 군을 치고 개봉·남양을 거쳐 무관·요관을 넘어 함양에 이르러 진을 멸한다.

정사 조상국세가: 조참은 성양 남쪽에서 왕리의 군을 치고, 개봉에서 조분을 포위했으며, 남양군을 모두 평정했다. 서쪽으로 무관·요관을 빼앗고 남전 남쪽에서 진군을 크게 깨 함양에 이르러 진을 멸했다.

출전: 史記 卷054 「擊王離軍成陽南」 / 史記 卷054 「盡定南陽郡」 / 史記 卷054 「秦軍大破遂至咸陽滅秦」

-206년 · 건성후·장군 · 대승

한중에서 장군이 되어 삼진을 평정하고 장평 군을 치며 폐구에서 장함을 포위한다.

정사 조상국세가: 항우가 패공을 한왕으로 삼자 한왕이 조참을 건성후로 봉했다. 한중에 따라가 장군이 되었고, 돌아와 삼진을 평정할 때 호치 남쪽에서 장평의 군을 깨고 장군으로 병사를 이끌어 폐구에서 장함을 포위했다.

출전: 史記 卷054 「項羽至以沛公為漢王」 / 史記 卷054 「從至漢中遷為將軍」 / 史記 卷054 「擊章平軍於好畤南破之」 / 史記 卷054 「參以將軍引兵圍章邯於廢丘」

-205년 · 중위→가좌승상→우승상 · 중요

중위로 한왕을 따라 임진관을 나가 팽성에서 한군이 크게 패하자 옹구를 포위해 빼앗는다. 위왕 표가 반하자 한신과 동장에서 위군을 깨고 표를 생포해 위 땅을 평정한다.

정사 조상국세가: 조참은 중위로 한왕을 따라 임진관을 나가 수무를 치고 정도에서 용저·항타를 깼으나, 항적 군과 싸운 팽성에서 한군이 크게 패했다. 조참은 옹구를 포위해 빼앗았다. 위왕 표가 반하자 가좌승상으로 한신과 동쪽으로 위군을 깨고 표를 생포해 위 땅 52성을 평정했다.

관련: 안읍 전투(위표 정벌)

출전: 史記 卷054 「以中尉從漢王出臨晉關」 / 史記 卷054 「擊項籍軍漢軍大敗走」 / 史記 卷054 「以假左丞相別與韓信東攻魏將軍孫遬軍東張大破之」 / 史記 卷054 「盡定魏地凡五十二城」

-204년 · 중위→가좌승상→우승상 · 대승

한신과 오 동쪽에서 조상 하열의 군을 깨 하열을 베고, 오성에서 척장군을 추격해 죽인 뒤 오창의 한왕에게 간다.

정사 조상국세가: 조참은 한신을 따라 오 동쪽에서 조의 상국 하열의 군을 크게 깨고 하열을 베었다. 한신이 정형으로 내려갈 때 조참은 돌아와 조의 별장 척장군을 오성 안에 포위해 달아난 척장군을 추격해 베었고, 병사를 이끌고 오창의 한왕에게 갔다.

출전: 史記 卷054 「因從韓信擊趙相國夏說軍於鄔東大破之斬夏說」 / 史記 卷054 「戚將軍出走追斬之」 / 史記 卷054 「乃引兵詣敖倉漢王之所」

-203년 · 중위→가좌승상→우승상 · 대승

우승상으로 한신에 속해 역하의 제군을 깨고 임치를 빼앗고, 상가밀에서 용저를 베어 제를 평정한다.

정사 조상국세가: 조참은 우승상으로 한신에 속해 제의 역하군을 깨고 임치를 취했다. 상가밀에서 용저의 군을 크게 깨 용저를 베었고 장군 주란을 사로잡았다. 제 70여 현을 평정했다.

관련: 역하 전투

출전: 史記 卷054 「攻破齊歷下軍遂取臨菑」 / 史記 卷054 「從韓信擊龍且軍於上假密大破之斬龍且」 / 史記 卷054 「定齊凡得七十餘縣」

-202년 · 제상국·평양후

항적이 죽고 천하가 정해지자 상국 인을 반납하고 제왕 비의 상국이 된다.

정사 조상국세가: 항적이 이미 죽고 천하가 정해지자 한왕이 황제가 되었고 한신은 초왕으로 옮겨 제는 군이 되었다. 조참은 한의 상국 인을 반납했고, 고제가 장자 비를 제왕으로 삼으며 조참을 제의 상국으로 삼았다.

출전: 史記 卷054 「項籍已死天下定」 / 史記 卷054 「而以參為齊相國」

-201년 · 제상국·평양후

부절을 쪼개 평양후에 봉해진다.

정사 조상국세가: 고조 6년 조참은 열후의 작위를 받아 제후들과 부절을 쪼개 대대로 끊기지 않게 했다. 식읍 평양 10,630호로 평양후라 불렸다.

출전: 史記 卷054 「以高祖六年賜爵列侯與諸侯剖符」 / 史記 卷054 「號曰平陽侯」

-197년 · 제상국·평양후

제상국으로 진희의 장수 장춘의 군을 깨뜨린다.

정사 조상국세가: 조참은 제의 상국으로 진희의 장수 장춘의 군을 쳐서 깼다.

출전: 史記 卷054 「以齊相國擊陳豨將張春軍破之」

-196년 · 제상국·평양후 · 대승

경포가 반하자 도혜왕의 병거·기병 12만을 이끌고 고조와 합쳐 경포군을 크게 깨고 기현까지 내려간다.

정사 조상국세가: 경포가 반하자 조참은 제상국으로 도혜왕의 병거와 기병 12만을 이끌고 고조와 만나 경포군을 크게 깼다. 남쪽으로 기에 이르고 돌아와 죽읍·상·소·유를 평정했다.

출전: 史記 卷054 「黥布反參以齊相國從悼惠王將兵車騎十二萬人」 / 史記 卷054 「與高祖會擊黥布軍大破之」 / 史記 卷054 「南至蘄」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7년 · 무관 입관

정사 고조본기·통감: 패공은 장량의 계책으로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달래는 한편 무관을 기습해 깨고, 요관 앞 산 위에 깃발을 늘어놓는 의병을 세운 뒤 남전 남쪽과 북쪽에서 진군을 크게 깨뜨렸다. 한 원년 10월 패공의 군이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진왕 자영이 목에 끈을 걸고 흰 수레, 흰 말로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통감은 8월 패공이 수만 명을 이끌고 무관을 쳐 도륙했다고 적는다. 진 쪽 병력 수는 원문에 없다.

-206년 · 진창 암도

정사 고조본기·회음후열전: 한 원년 4월 항우의 봉으로 한왕이 된 유방이 파·촉·한중으로 들어가며 장량의 권유로 지나온 잔도를 불태웠다(항우가 동쪽을 칠 뜻이 없다는 표시). 남정에서 병사들이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노래하자 한신이 「항우가 공신을 왕으로 봉하고 대왕만 남정에 두었으니 좌천이다, 삼진은 격문으로 평정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사기 고조본기는 8월에 한왕이 한신의 계책으로 고도(故道)를 거쳐 돌아 나와 옹왕 장한을 습격했다고 적고(회음후열전도 8월 「舉兵東出陳倉定三秦」), 한서 고조기는 같은 일을 5월로 적는다. 장한은 진창에서 맞섰으나 옹 군이 패했고 호치에서 다시 크게 졌으며 폐구로 달아났다. 한왕은 옹 땅을 평정하고 함양까지 가서 폐구를 포위했다. 「明修棧道,暗度陳倉」라는 말은 원문에 없는 후대 표현이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8한신 휘하에서 위·조·제를 평정하며 병사를 이끌었고 제상국으로 군 12만을 거느렸다(조상국세가).
무력77공성·야전의 선등·함진 기록이 많다(조상국세가).
지력평가 불가전략은 한신과 함께 움직여 독자 계책 기록은 적다.
정치96제상국으로 황로술을 써서 9년 동안 제를 안정시켰다(조상국세가).
매력55소하와 사이가 벌어졌으나 소하가 후임으로 추천했다(조상국세가).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참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