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수양의 비단 장수)
사망 -176년 — 효문제 4년(-176) 승상으로 재임 중 죽음(灌嬰列傳: 「嬰以丞相卒」). 연도는 사기 본문에 없고 한 문제 시기 통설 환산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패현 | 중연(패공 휘하) | 추정 |
| -208년 | 패현 | 중연(패공 휘하) | 추정 |
| -207년 | 옹구 | 중연(패공 휘하) | 기록 |
| -206년 | 폐구 | 낭중→중알자 | 기록 |
| -205년 | 형양 | 중대부→어사대부(기병 지휘) | 기록 |
| -204년 | 역하 | 중대부→어사대부(기병 지휘) | 추정 |
| -203년 | 고밀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기록 |
| -202년 | 동성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기록 |
| -201년 | 진(陳)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기록 |
| -200년 | 마읍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기록 |
| -196년 | 곡역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8년 | 한 | 중연(패공 휘하) | 추정 |
| -207년 | 한 | 중연(패공 휘하) | 기록 |
| -206년 | 한 | 낭중→중알자 | 기록 |
| -205년 | 한 | 중대부→어사대부(기병 지휘) | 기록 |
| -204년 | 한 | 중대부→어사대부(기병 지휘) | 추정 |
| -203~-200년 | 한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기록 |
| -199~-197년 | 한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불명 |
| -196년 | 한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기록 |
| -195년 | 한 | 어사대부→차기장군·영음후 | 불명 |
옹구에서 장함이 항량을 죽인 뒤 패공이 탕으로 돌아오자 중연으로 따르며 성무·강리 진군을 깨 칠대부 작위를 받는다.
정사 관영열전: 패공이 옹구를 공략하고 장함이 항량을 죽인 뒤 탕으로 돌아오자 관영은 중연으로서 성무의 동군위와 강리의 진군을 쳐 깼다. 맹렬히 싸워 칠대부를 받았다.
출전: 史記 卷095 「嬰初以中涓從擊破東郡尉於成武及秦軍於扛裏」 / 史記 卷095 「疾鬬賜爵七大夫」
개봉·곡우를 거쳐 낙양, 남양을 평정하고 무관을 넘어 남전에서 싸워 창문군이 된다.
정사 관영열전: 개봉·곡우에서 싸우고 양무 서쪽에서 낙양까지 진군을 시북에서 깼으며 양성 동쪽에서 남양 수 의를 깨 남양군을 평정했다. 무관으로 들어가 남전에서 싸운 뒤 패상에 이르러 창문군이 되었다.
관련: 무관 입관
출전: 史記 卷095 「遂定南陽郡」 / 史記 卷095 「西入武關戰於藍田疾力至霸上賜爵執珪號昌文君」
한왕을 따라 한중에 들어가 중알자가 되고, 삼진 평정에 참여해 폐구에서 장함을 포위한다.
정사 관영열전: 패공이 한왕이 되자 관영은 낭중이 되어 한중에 들어갔고 10월 중알자가 되었다. 삼진을 평정하며 역양을 함락하고 새왕을 항복받았으며 폐구에서 장함을 포위했으나 뽑지 못했다.
출전: 史記 卷095 「沛公立為漢王拜嬰為郎中從入漢中」 / 史記 卷095 「還圍章邯於廢丘未拔」
팽성 패전 뒤 옹구를 거쳐 형양에서 기병 지휘관(중대부)이 되어 초 기병을 형양 동쪽에서 크게 깬다.
정사 관영열전: 팽성에서 한왕이 크게 지자 관영은 따라 옹구에 주둔했다. 형양에서 기병 지휘관을 고르게 되자 관영이 나이는 어려도 힘껏 싸웠다고 중대부로 올려 이필·낙갑을 좌우 교위로 삼고, 낭중 기병을 이끌어 형양 동쪽에서 초 기병을 크게 깼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95 「乃拜灌嬰為中大夫令李必駱甲為左右校尉」 / 史記 卷095 「擊楚騎於滎陽東大破之」
어사대부로 한신에게 속해 역하에서 제군을 깨고 임치를 항복받는다.
정사 관영열전: 원문은 3년이라 적었다. 어사대부로서 낭중 기병을 거느려 한신에게 속해 역하에서 제군을 깨고 임치를 항복시켜 제의 수상 전광을 얻었다. 고조본기의 제 공격 서술은 4년이어서 연도가 어긋난다.
출전: 史記 卷095 「擊破齊軍於歷下」 / 史記 卷095 「降下臨菑得齊守相田光」
고밀에서 한신과 함께 용저·유공 선을 쳐 용저를 베고 주란을 사로잡는다.
정사 관영열전: 동쪽으로 한신을 따라 고밀에서 용저·유공 선을 공격해 용저를 베고 아장 주란을 생포했다. 고조본기 또한 관영의 활약으로 용저가 죽었다고 적는다.
관련: 유수 전투
출전: 史記 卷095 「東從韓信攻龍且留公旋於高密卒斬龍且」 / 史記 卷095 「身生得亞將周蘭」
해하에서 패주한 항적을 동성까지 추격하고 병사 다섯이 함께 항적을 벤다.
정사 관영열전: 항적이 해하에서 패해 달아나자 관영은 어사대부로 조서를 받아 거기를 거느리고 따로 항적을 동성까지 쫓아 깼다. 휘하 병사 다섯이 함께 항적을 베어 모두 열후 작위를 받았다.
관련: 해하 전투
출전: 史記 卷095 「嬰以御史大夫受詔將車騎別追項籍至東城破之」 / 史記 卷095 「所將卒五人共斬項籍皆賜爵列侯」
차기장군으로 연왕 장도를 치는 일에 따른다.
정사 관영열전: 한왕이 황제가 되자 읍 3천 호가 더해졌고 그해 가을 차기장군으로 연왕 장도를 쳐서 깨는 데 따랐다.
출전: 史記 卷095 「以車騎將軍從擊破燕王臧荼」
진에서 초왕 한신을 붙잡는 일에 따르고, 영음후로 부절을 나누어 받는다.
정사 관영열전: 이듬해 진에 이르러 초왕 한신을 붙잡았고, 돌아와 부절을 나누어 영음후에 봉해져 영음 2천5백 호를 받았다.
관련: 운몽 한신 체포
출전: 史記 卷095 「明年從至陳取楚王信」 / 史記 卷095 「號曰潁陰侯」
한왕 신을 마읍에서 쫓아 흉노 기병을 무천 북쪽에서 깨고, 평성에서 포위되었다 동원으로 물러난다.
정사 관영열전: 차기장군으로 대에서 반란한 한왕 신을 치며 마읍에 이르러 조서로 누번 이북 6현을 항복시키고 대 좌상을 베었으며, 흉노 기병을 무천 북쪽에서 깼다. 평성에서 흉노에게 포위된 뒤 군을 동원으로 돌렸다.
관련: 평성 백등산 포위
출전: 史記 卷095 「至平城為胡所圍從還軍東垣」 / 史記 卷095 「破胡騎於武泉北」
진희를 치는 별동대로 곡역 아래에서 후 오를 베고 여러 현을 항복시킨다.
정사 관영열전: 진희를 칠 때 조서로 따로 진희의 승상 후 오의 군을 곡역 아래에서 깨고 오 및 특장 다섯을 베었다. 곡역·노노·상곡양·안국·안평을 항복시키고 동원을 함락했다.
관련: 진희 반란
출전: 史記 卷095 「受詔別攻豨丞相侯敞軍曲逆下破之」 / 史記 卷095 「攻下東垣」
영포 토벌에서 차기장군으로 먼저 나아가 별장을 깨고 회수 가까이 쫓는다.
정사 관영열전: 영포가 반란하자 관영은 차기장군으로 먼저 나와 영포의 별장을 상에서 깨고 영포 상주국·대사마 군을 쳤으며 비주를 깨고 회수 가까이 쫓았다. 이어 영음 5천 호로 정해졌다.
관련: 영포 토벌
출전: 史記 卷095 「黥布反以車騎將軍先出攻布別將於相破之」 / 史記 卷095 「追北至淮上」
정사 전담열전: 전횡이 역이기의 말을 따라 역하의 군(화무상·전해)을 풀고 한과 화평하려 하자, 한신이 조·연을 평정한 뒤 괴통의 계로 평원을 건너 역하의 제군을 습격하고 임치에 들어갔다. 관영열전: 관영은 어사대부로 기병을 이끌고 한신에게 속해 역하에서 제군을 깨 거기장군 화무상과 장리 46명을 사로잡았고, 임치를 항복시켜 제의 수상 전광을 얻었다. 조상국세가: 조참도 우승상으로 한신에 속해 역하의 제군을 깨고 임치를 취했다. 제왕 광과 상 횡은 역이기가 자신들을 팔았다며 삶아 죽였고 광은 고밀로 달아났다.
정사 항우본기: 해하에서 한군과 제후군에 겹겹이 둘러싸인 항우는 밤에 사방의 초나라 노래를 듣고 놀라 우미인과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기병 800여 명과 밤에 포위를 뚫고 남으로 달아났고, 새벽에야 안 한군은 기장 관영에게 기병 5천을 주어 추격시켰다. 회수를 건널 때 따르는 기병은 100여 명, 음릉에서 길을 잃고 늪에 빠져 따라잡혔고, 동성에 이르렀을 때는 28기였다. 항우는 세 곳으로 나눈 돌격으로 한 장수와 도위를 베었으나, 오강에서 정장이 배를 대고 강동 재기를 권하자 거절하고 말을 주고 걸어서 싸우다 몸에 십여 군데 상처를 입고 여마동에게 "내가 너에게 덕을 베풀겠다"며 스스로 목을 찔렀다. 왕예·양희·여마동·여승·양무가 몸을 나눠 가졌다.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6 | 제를 격파하고 용저를 베었으며 추격 끝에 항적을 동성에서 끊는 데 크게 기여했다(관영열전). |
| 무력 | 88 | 연전하는 기병 지휘에서 「疾鬬」·「疾戰」로 공을 세웠고 항적을 쫓아 병사 다섯이 함께 베게 했다(관영열전). |
| 지력 | 69 | 기병 지휘관으로 천거된 뒤 초 기병을 형양 동쪽에서 크게 깼다. 모략 사례는 적다(관영열전). |
| 정치 | 59 | 승상으로 흉노 방어에 나섰으나 제북왕 반란으로 군이 철회되었다(관영열전). |
| 매력 | 70 | 고조의 중연으로 시작해 공신 후가 되었고 여씨 토벌 뒤 대왕을 세우는 데 함께했다(관영열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영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