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許攸)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원소·원씨출생 생년 불명사망 204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04년 — 정사에 「믿는 구석이 있어 불경해 처형됨」으로만 적혀 연도 없음. 204는 통설을 둔 자리값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0년관도원소의 모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8~199년기타·재야(왕분·주정과 영제 폐립 모의)불명
200년원소·원씨원소의 모사기록
201~204년위조조 아래불명

나온 사건·전투

188년 · (왕분·주정과 영제 폐립 모의)

기주자사 왕분·주정 등과 호걸을 모아 영제를 폐하고 합비후를 세울 모의를 하고 조조에게 알렸으나 조조가 거절해 왕분 등이 패한다.

정사 무제기: 기주자사 왕분, 남양 허유, 패국 주정 등이 호걸을 연결해 영제를 폐하고 합비후를 세우려 하고 조조에게 알렸으나 조조가 거절하고 왕분 등은 마침내 패했다. 연도는 중평 5년(188)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1 「冀州刺史王芬、南陽許攸、沛國周旌等連結豪傑,謀廢靈帝」

200년 · 원소의 모사

원소가 기주·청주·유주·병주를 맡기고 군을 일으킬 때 전풍·순심과 함께 모주가 되고, 재물을 채워 주지 않는다고 원소를 떠나 조조에게 투항한다.

정사 무제기: 원소가 수십 만 무리에 심배·봉기가 군사를 통솔하고 전풍·순심·허유가 모주, 안량·문추가 장수가 되어 허를 치려 했다. 뒤에 허유가 재물을 탐해 원소가 다 채워 주지 못하자 허유가 조조에게 와 순우경 등을 치라고 권했다.

연의: 연의 30회 — 연의 30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관련: 관도 전투

출전: 三國志 卷01 「紹謀臣許攸貪財,紹不能足,來奔,因說公擊瓊等」

201년 · 조조 아래

조조에게 귀의한 뒤 순우경의 군량 수송대 기습을 권해 관도 전투를 결정짓는다.

정사 무제기: 조조가 순우경 등을 밤에 기습해 크게 깨고 모두 베자 원소가 처음 듣고 놀랐다. 허유의 귀의는 관도 대치(건안 5년) 말이다. 정사 본문은 허유의 이후 행적과 몰년을 적지 않고 최염전에서 「구별 믿고 불경해 처형됨」으로만 언급한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1 「公乃留曹洪守,自將步騎五千人夜往」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4년 · 업 공방

정사 무제기: 204년 4월 조조가 조홍에게 업의 포위를 맡기고 토산·땅굴을 파고 참호를 두르며 장수(漳水)를 터 성을 물에 잠가 성중 굶어 죽은 자가 절반을 넘었다. 7월 원상이 구원하러 돌아와 서산을 따라 오다 조조에게 막혀 달아났다. 8월 심배의 조카 심영이 밤에 성 동문을 열어 조조군이 들어와 심배를 사로잡았다. 연의 32회는 허유의 수공 계책과 지하도로 그린다.

연의: 연의 32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무력평가 불가무력 기록은 없다.
지력85원소가 재물을 채워 주지 않자 조조에게 와 순우경 등의 군량 수송대를 치라고 권했고 조조가 대승했다(무제기).
정치50왕분 등과 호걸을 모아 영제를 폐립하려는 모의에 가담했다(무제기).
매력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허유의 이동 경로

원소·원씨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