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袁紹)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원소·원씨출생 생년 불명사망 202년기록 연도 6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02년 — 건안 7년(202) 5월, 관도 패전 뒤 병을 얻어 우울 끝에 죽었다(원소전: 自軍敗後發病,七年,憂死).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8년낙양중군교위(서원 팔교위)기록
189년낙양 · 다른 후보: 남피사예교위 → 발해태수(도망)기록
190년남피발해태수·거기장군(맹주)추정
191년업기주목기록
192년업기주목기록
193년업기주목·거기장군추정
194년업기주목·거기장군추정
195년업기주목·거기장군추정
196년업대장군·업후추정
197년업대장군·업후추정
198년업대장군·업후추정
199년이경대장군(공손찬 평정)기록
200년관도대장군(관도)기록
201년업대장군추정
202년업대장군추정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87년후한 조정시어사·중군교위(연대 불명)불명
188년후한 조정중군교위(서원 팔교위)기록
189년후한 조정사예교위 → 발해태수(도망)기록
190년원소·원씨발해태수·거기장군(맹주)추정
191~192년원소·원씨기주목기록
193~195년원소·원씨기주목·거기장군추정
196~198년원소·원씨대장군·업후추정
199년원소·원씨대장군(공손찬 평정)기록
200년원소·원씨대장군(관도)기록
201~202년원소·원씨대장군추정

나온 사건·전투

189년 · 사예교위 → 발해태수(도망)

환관을 대량 주살하고, 동탁의 폐립 논의에서 칼을 비껴 차고 길게 읍한 뒤 낙양을 떠난다.

정사 원소전: 단규 등이 황제를 끼고 달아나자 원소는 환관을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죽였다. 동탁이 폐립을 논하자 칼을 비껴 들고 읍하며 떠나 기주로 달아났다.

연의: 연의 3회 — 연의 3회가 같은 장면을 극화하며 칼을 뽑아 대치하는 모습이 더해진다.

관련: 여포,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부

출전: 三國志 卷06 「遂勒兵捕諸閹人,無少長皆殺之」 / 三國志 卷06 「橫刀長揖而去」

190년 · 발해태수·거기장군(맹주)

동탁이 달래듯 발해태수로 봉하자 발해에서 병을 일으키고 맹주가 된다.

정사 원소전: 주비·오경 등이 동탁을 설득해 원소를 발해태수·방향후에 봉하게 했다. 원소는 발해에서 군사를 일으켜 거기장군을 자칭하고 맹주가 됐다.

연의: 연의 5회 — 연의 5회는 18로 제후의 맹주 추대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乃拜紹勃海太守,封邟鄉侯」 / 三國志 卷06 「紹自號車騎將軍,主盟」

191년 · 기주목 · 승진

한복에게서 기주를 넘겨받아 기주목이 된다.

정사 원소전: 고간·순심 등이 한복을 설득해 기주를 넘기게 했다. 한복이 양보하자 원소가 기주목을 겸했다.

연의: 연의 7회 — 연의 7회는 원소와 공손찬의 반목, 기주 탈취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乃讓紹,紹遂領冀州牧」

192년 · 기주목 · 대승

계교에서 공손찬을 크게 쳐부수고 업에 자리를 굳힌다.

정사 공손찬전: 원소가 광천에서 국의를 앞세워 공손찬과 싸워 엄강을 사로잡았다. 연도는 자치통감 초평 3년 서술에 따른 추정이며, 계교 전투명은 자치통감 권60에 나온다.

연의: 연의 7회 — 연의 7회가 계교 전투를 문추·국의와 얽어 극화한다.

관련: 계교 전투

출전: 三國志 卷08 「紹軍廣川,令將麴義先登與瓚戰,生禽綱」

196년 · 대장군·업후 · 승진

헌제를 업으로 맞이하자는 곽도의 건의를 따르지 않다가 조조에게 선수를 뺏기고 태위·대장군에 오른다.

정사 원소전: 곽도가 천자를 업으로 모시자 했으나 원소는 따르지 않았다. 조조가 천자를 허로 맞이하자 원소는 후회했다. 천자는 원소를 태위, 이어 대장군에 봉했다.

연의: 연의 14회 — 연의 14회는 헌제 맞이를 둘러싼 조조와 원소의 신경전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圖還說紹迎天子都鄴,紹不從」 / 三國志 卷06 「會太祖迎天子都許」

199년 · 대장군(공손찬 평정) · 대승

역경(易京)을 포위해 공손찬을 자살하게 하고 하북 4주를 장악한다.

정사 공손찬전: 건안 4년 원소가 군을 모두 보내 역경을 포위, 지하도로 누각을 무너뜨리자 공손찬은 처자를 죽이고 자살했다.

연의: 연의 28회 — 연의는 공손찬의 최후를 따로 그리지 않고 28회에서 조운이 지나가듯 '공손찬이 패해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고 말하는 정도로만 언급한다.

관련: 역경 전투

출전: 三國志 卷08 「紹為地道,突壞其樓,稍至中京」 / 三國志 卷08 「盡殺其妻子,乃自殺」

200년 · 대장군(관도) · 대패

백마·연진에서 안량·문추를 잃고, 관도에서 오소의 군량이 불타 대패한다.

정사 원소전: 백마에서 안량이, 연진에서 문추가 죽었다. 관도에서 조조가 순우경이 지키던 오소를 불태우자 고람·장합이 항복했고 원소는 아들과 단기로 황하를 건넜다.

연의: 연의 30~31회 — 연의 30~31회가 관도대전을 극화한다.

관련: 관도대전, 오소 습격 · 관도 전투

출전: 三國志 卷06 「太祖救延,與良戰,破斬良」 / 三國志 卷06 「瓊宿烏巢,去紹軍四十里」 / 三國志 卷06 「紹與譚單騎退渡河」

200년 · 대장군(관도)

관도 패전 전에 전풍을 가두고, 패한 뒤 그를 죽인다.

정사 원소전: 전풍이 지구전을 건의하자 원소는 분노해 형틀에 묶어 가뒀고, 패전 후 죽였다.

연의: 연의 30회 — 연의 30회가 옥중의 전풍 이야기를 극화한다.

관련: 관도대전, 오소 습격 · 관도 전투

출전: 三國志 卷06 「紹怒甚,以爲沮衆,械繫之」 / 三國志 卷06 「遂殺之」

202년 · 대장군 · 대패

관도 패전 후 병을 얻어 건안 7년에 죽는다. 후계는 셋째 아들 원상으로 정해졌다.

정사 원소전: 군이 패한 뒤 병을 얻어 건안 7년에 우울로 죽었다. 심배·봉기가 원상을 세워 장자 원담과 틈이 벌어졌다.

연의: 연의 32회 — 연의 32회가 원소의 죽음과 후계 다툼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自軍敗後發病,七年,憂死」 / 三國志 卷06 「乃奉尚代紹位」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190년 · 호뢰관 전투

정사 정사에는 호뢰관에서 연합군과 동탁군이 싸운 기록이 없다. 무제기는 원소 등이 산동에서 일어났으나 동탁의 병세가 강해 먼저 진군하는 자가 없었다고 적는다. 화웅을 벤 것은 연의에서 관우(온주참화웅)로 그려지나 정사에서는 손견이 양인에서 화웅을 벤다. 삼영전여포도 정사에 없다.

연의: 연의 5~6회

200년 · 백마 전투

정사 무제기·관우전: 200년 2월 원소가 안량을 보내 백마에서 동군태수 유연을 포위하자, 순유의 계책으로 조조가 연진에서 도하하는 척해 원소의 군을 서쪽으로 끌어낸 다음, 가벼운 군으로 백마를 급습했다. 장료·관우가 선봉으로 올라 안량을 베고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관우전은 관우가 만군 속에서 안량의 머리를 베어 돌아왔다고 전한다.

연의: 연의 25~26회

201년 · 창정 전투

정사 무제기: 201년 4월 조조가 황하 가에서 군세를 보이고 원소의 창정 주둔군을 깨뜨렸다. 원소는 돌아가 흩어진 군을 수습하고 반란한 군현을 쳤다. 연의 31회는 원소가 4주 군 20~30만을 이끌고 창정에 이르러, 정욱의 십면매복으로 크게 깨진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1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0기주 외 3주를 합쳐 정병 10만, 기병 1만을 갖췄으나 관도에서 단 한 번의 큰 싸움에 무너졌다(원소전).
무력57무예 기록이 거의 없다. 외모와 위엄이 있다는 서술뿐이라 중간 아래로 둔다(원소전).
지력61진수 평: 모략을 좋아하나 결단이 없고 인재를 쓰지 못하며 좋은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好謀無決). 전풍·저수의 계책을 모두 버렸다(원소전).
정치77한복의 기주를 넘겨받아 4주를 거느렸고 심배·봉기로 군정을 통솔했다(원소전). 후계를 정하지 못해 아들들이 갈라섰다.
매력86사세삼공 집안으로 몸을 낮춰 선비를 대했고 선비가 많이 따랐다(원소전: 能折節下士,士多附之).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원소의 이동 경로

원소·원씨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