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05년 — 건안 10년(205) 1월 남피에서 조조에게 패해 참수됨(원소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9년 | 임치 | 청주자사 | 추정 |
| 200년 | 관도 | (관도에서 패해 원소와 단기로 도하) | 기록 |
| 202년 | 여양 | 거기장군 자칭(여양) | 기록 |
| 203년 | 여양 | 거기장군 자칭(여양) | 기록 |
| 204년 | 평원 | (평원으로 달아남) | 기록 |
| 205년 | 남피 | (남피에서 패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8년 | 원소·원씨 | (원소의 장자, 연대 불명) | 불명 |
| 199년 | 원소·원씨 | 청주자사 | 추정 |
| 200년 | 원소·원씨 | (관도에서 패해 원소와 단기로 도하) | 기록 |
| 201년 | 원소·원씨 | 청주자사 | 불명 |
| 202~203년 | 원소·원씨 | 거기장군 자칭(여양) | 기록 |
| 204년 | 원소·원씨 | (평원으로 달아남) | 기록 |
| 205년 | 원소·원씨 | (남피에서 패사) | 기록 |
역경에서 공손찬을 깬 뒤 원소가 장자 담을 청주로 내보낸다. 저수가 '화의 시작'이라 간했다.
정사 원소전: 원소는 '여러 아들에게 각각 한 주를 주려 한다'며 담을 청주로, 중자 희를 유주로, 생질 고간을 병주로 보냈다.
연의: 연의 32회 — 연의 32회가 원소가 아들들을 각 주에 봉하는 대목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出長子譚爲青州,沮授諫紹」
원소가 죽자 심배 등이 원상을 세워 담은 후계에서 밀려 거기장군을 자칭한다. 두 형제가 틈이 벌어진다.
정사 원소전: 심배·봉기가 원상을 후계로 세우자 담은 도착해서도 서지 못하고 스스로 거기장군을 칭했다. 이로 인해 담과 상이 틈이 생겼다.
연의: 연의 32회 — 연의 32회가 후계 다툼과 형제의 불화를 극화한다.
관련: 여양 전투
출전: 三國志 卷06 「譚至,不得立,自號車騎將軍」
원상에게 쫓겨 평원으로 달아나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 구원을 청한다.
정사 원소전: 담·상이 서로 싸워 담이 평원으로 달아났다. 원상이 급히 치자 담은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 구원을 청했다. 조조가 돌아와 담을 구했다.
연의: 연의 32회 — 연의 32회가 신비의 사신 파견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譚敗奔平原」 / 三國志 卷06 「譚遣辛毗詣太祖請救」
조조에게 남피에서 패해 참수된다. 곽도 등도 함께 죽는다.
정사 원소전: 담은 남피에서 청하를 낀 채 둔했고 건안 10년 1월 조조가 공격해 함락, 담과 곽도 등을 베었다.
연의: 연의 33회 — 연의 33회가 남피 전투와 원담의 최후를 극화한다.
관련: 남피 전투
출전: 三國志 卷06 「十年正月,攻拔之,斬譚及圖等」
정사 무제기: 201년 4월 조조가 황하 가에서 군세를 보이고 원소의 창정 주둔군을 깨뜨렸다. 원소는 돌아가 흩어진 군을 수습하고 반란한 군현을 쳤다. 연의 31회는 원소가 4주 군 20~30만을 이끌고 창정에 이르러, 정욱의 십면매복으로 크게 깨진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1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3 | 원소의 장자로 청주를 맡았고, 후계 다툼 뒤 군을 거느렸으나 조조 앞에서 거듭 무너졌다(원소전).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 본문에 직접 근거가 적어 기본값 50 부근으로 둔다. |
| 지력 | 56 | 조조에게 구원을 청하는 한편 몰래 장군 인수를 위조해 조조를 속이려다 들켰다(원소전). |
| 정치 | 53 | 청주를 맡았으나 업적 서술은 없다. |
| 매력 | 50 | 곽도·신평 등이 장자임을 들어 옹립하려 했으나 심배 일파에 밀렸다(원소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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