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臧洪)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원소·원씨출생 생년 불명사망 195년기록 연도 5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5년 — 자치통감은 흥평 2년(195) 말의 일로 싣는다. 정사에는 함락 연도가 없다. 동군 동무양이 원소에게 함락돼 처형됨(장홍전).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8년옹구광릉 태수 장초의 공조추정
189년옹구광릉 태수 장초의 공조추정
190년산조(산조 회맹 맹약을 주도)기록
192년동무양동군태수(동무양)기록
193년동무양동군태수(동무양)기록
194년동무양동군태수(동무양)기록
195년동무양동군태수(원소에 반기, 함락·처형)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87년기타·재야즉구 장(長) → 광릉 태수 장초의 공조(연대 불명)불명
188~189년기타·재야광릉 태수 장초의 공조추정
190년기타·재야(산조 회맹 맹약을 주도)기록
191년원소·원씨청주 책임자(원소의 요청)불명
192~194년원소·원씨동군태수(동무양)기록
195년기타·재야동군태수(원소에 반기, 함락·처형)기록

나온 사건·전투

190년 · (산조 회맹 맹약을 주도) · 승진

산조에서 장막·유대 등과 동탁 토벌 맹약을 올리는데, 아무도 맹주 자리를 맡지 않아 장홍이 단에 올라 맹서를 읽는다.

정사 장홍전: 장초가 장홍을 데리고 진류의 장막에게 가 산조에서 모였다. 여러 주군이 서로 양보하며 맹주 노릇을 하지 않자 모두 장홍을 추대했다. 장홍이 단에 올라 소반을 들고 피를 마시며 맹서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7 「洪乃升壇操槃歃血而盟曰」 / 三國志 卷07 「咸共推洪」

191년 · 청주 책임자(원소의 요청) · 승진

원소가 청주자사 초화의 사망 뒤 장홍에게 청주를 맡겨 무리를 달래게 한다. 2년 만에 도적이 달아나자 동군태수로 옮긴다.

정사 장홍전: 청주자사 초화가 죽자 원소가 장홍에게 청주를 맡겼다. 2년 동안 군도가 달아나자 원소가 장홍의 재능에 감탄하며 동군태수로 옮겨 동무양에 치소를 두게 했다. 청주 영(領)의 시기는 자치통감 초평 원년(190) 서술이 있어 연도는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7 「紹使洪領青州以撫其眾」 / 三國志 卷07 「洪在州二年,群盜奔走」

195년 · 동군태수(원소에 반기, 함락·처형) · 대패

조조가 옹구에서 장초를 포위했을 때 원소의 허락을 못 받아 구원하지 못하고, 장초가 멸족하자 원소와 절교해 동무양에서 1년 넘게 버틴다. 성이 무너져 원소 앞에서 꾸짖다 처형된다.

정사 장홍전: 장홍은 원소에게 군사를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해 장초를 구하지 못했다. 장초가 멸족하자 장홍은 원소와 절교, 원소가 포위해 해를 넘겼다. 성중의 식량이 떨어져 병사와 백성이 서로 베고 죽었다. 성이 함락되자 장홍은 원소를 꾸짖다 처형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7 「紹興兵圍之,歷年不下」 / 三國志 卷07 「男女七八千人相枕而死,莫有離叛」 / 三國志 卷07 「見洪辭切,知終不為己用,乃殺之」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9동군을 거점으로 성이 함락될 때까지 1년 넘게 원소의 대군을 막았고 병사와 백성이 흩어지지 않았다(장홍전).
무력57몸이 크고 풍채가 컸으나 무용 서술은 없다(體貌魁梧)(장홍전).
지력77원소에게 보낸 답서에서 대의를 논리 정연하게 세웠다. 성이 무너져도 굴하지 않았다(장홍전).
정치75청주를 맡은 2년 만에 도적이 달아나 원소가 감탄했다(洪在州二年,群盜奔走)(장홍전).
매력91굶주린 성에서 병사와 백성이 7~8천이 서로 베고 죽어도 한 사람도 떠나거나 배반하지 않았다(莫有離叛)(장홍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홍의 이동 경로

원소·원씨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