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196년 — 「양성을 공격하다 유시에 맞아 죽었다」로만 적혀 연도 없음. 196은 자리값(통설)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191년 | 기타·재야 | 교위 | 불명 |
| 192~194년 | 기타·재야 | 표기장군·평양후 | 불명 |
| 195~196년 | 기타·재야 | 표기장군 | 불명 |
동탁의 사위 우보 아래서 이각·곽사와 함께 진류·영천 여러 현을 약탈한다.
정사 동탁전: 처음에 동탁의 사위 중랑장 우보가 군을 이끌고 섬에 따로 주둔해 교위 이각·곽사·장제를 보내 진류·영천 여러 현을 노략질하게 했다. 연도는 동탁 전성기(190~192)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6 「略陳留、潁川諸縣」
이각 등이 장안을 함락한 뒤 표기장군·평양후가 되어 홍농에 주둔한다.
정사 동탁전: 장안이 함락된 뒤 장제는 표기장군·평양후가 되어 홍농에 주둔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6 「濟爲驃騎將軍、平陽侯」
이각과 곽사가 서로 공격해 장안이 혼란스러워지자 섬에서 와 화해를 붙이고 천자가 나올 수 있게 한다.
정사 동탁전: 이각의 장수 양봉 등이 반란해 이각이 약해졌고 장제가 섬에서 와 화해시켜 천자가 나왔다. 곽사가 다시 천자를 위협해 미로 돌아가려 하자 천자는 양봉의 영으로 달아났다. 연도는 헌제 동귀(195~196)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6 「張濟自陝和解之」
군을 이끌고 형주 경계로 들어와 양성을 공격하다 유시에 맞아 죽는다. 유표가 그 무리를 받아들인다.
정사 유표전: 장제가 군을 이끌고 형주 경계에 들어와 양성을 공격하다 유시에 맞아 죽었다. 형주 관속이 모두 하례하자 유표는 「제가 궁해서 왔는데 주인이 무례해 교전한 것은 내 뜻이 아니니 조문은 받되 축하는 받지 않겠다」며 사람을 보내 그 무리를 받아들였고 무리가 기뻐하며 복종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6 「攻穰城,爲流矢所中死」
정사 후한서 동탁전: 동탁이 죽은 뒤 이각·곽사가 사면을 구했으나 왕윤이 거절하자, 가후가 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가 동탁의 원수를 갚자고 권했다. 이각 등이 장안을 포위한 지 8일 만에 여포군 안의 수병(叟兵)이 안에서 호응해 성이 뚫렸다. 여포는 패해 달아났고 왕윤은 피살되었다.
연의: 연의 9회
정사 무제기·장수전: 197년 정월 조조가 완에 이르자 장수가 항복했다가 곧 뉘우쳐 다시 반란했다. 장수전은 조조가 장제의 아내를 들이자 장수가 한을 품고 습격했다고 적는다. 조조는 싸움에 졌고 유시에 맞았으며 장자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죽었다. 전위가 문을 지키며 버텨 조조가 가벼운 기병으로 빠져나갔고 전위도 전사했다. 연의 16회는 장수 숙모 추씨와의 관계, 가후의 계책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16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50 | 이각·곽사의 싸움에 진(陝)에서 와 화해를 붙여 천자가 빠져나올 수 있게 했다(동탁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매력 | 50 | 유표가 「제가 궁해서 왔는데 주인이 무례해 교전했다」며 조문만 받고 축하는 받지 않고 그의 무리를 받아들이자 무리가 기뻐했다(유표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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