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5년경(추정) — 생년 불명(19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38년 — 경초 2년(238) 8월 양평 성이 무너진 뒤 수백 기로 탈출하다 떨어진 별 자리 근처에서 아들 수와 함께 참수(공손도전 부 공손연)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28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숙부 공손공의 지위를 탈취)·양렬장군 | 기록 |
| 229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양렬장군 | 추정 |
| 230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양렬장군 | 추정 |
| 231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양렬장군 | 추정 |
| 232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양렬장군 | 추정 |
| 233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 — 오 사자 장미·허안 참살 | 기록 |
| 234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대사마·낙랑공 | 추정 |
| 235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대사마·낙랑공 | 추정 |
| 236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대사마·낙랑공 | 추정 |
| 237년 | 양평(襄平) | 요동태수 → 연왕 자칭(관구검 격퇴) | 기록 |
| 238년 | 양평(襄平) | 연왕 — 사마의에게 양평에서 패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28년 | 기타·재야 | 요동태수(숙부 공손공의 지위를 탈취)·양렬장군 | 기록 |
| 229~232년 | 기타·재야 | 요동태수·양렬장군 | 추정 |
| 233년 | 기타·재야 | 요동태수 — 오 사자 장미·허안 참살 | 기록 |
| 234~236년 | 기타·재야 | 요동태수·대사마·낙랑공 | 추정 |
| 237년 | 기타·재야 | 요동태수 → 연왕 자칭(관구검 격퇴) | 기록 |
| 238년 | 기타·재야 | 연왕 — 사마의에게 양평에서 패사 | 기록 |
병으로 음경이 쇠해 환관이 된 숙부 공손공을 위협해 자리를 빼앗고, 명제가 즉위해 양렬장군·요동태수에 임명하자 남쪽으로 손권과 사신을 오가며 뇌물을 주고받는다. 태화 2년.
정사 공손연전: 공손공이 병으로 음경이 사라져 환관처럼 되어 나라를 다스릴 힘이 없었다. 태화 2년 공손연이 공손공의 자리를 위협해 빼앗았다. 명제가 즉위해 공손연을 양렬장군·요동태수로 삼자 공손연은 남쪽으로 손권과 사신을 보내 왕래하며 뇌물을 주고받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본 「淵脅奪恭位」
손권이 장미·허안 등을 보내 금옥 보물로 연왕에 봉하려 하자, 공손연이 오가 멀어 의지하기 어렵고 재물이 탐나 사자를 끌어들여 장미·허안 등의 목을 베어 위에 보낸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오 가화 2년(233)으로 추정.
정사 공손연전: 손권이 사자 장미·허안 등을 보내 금옥과 진보를 가지고 공손연을 연왕으로 세우려 했다. 공손연도 오가 멀어 믿기 어렵고 또 재물이 탐나 그 사자를 끌어들여 장미·허안 등을 모두 베어 머리를 위에 보냈다. 명제가 공손연을 대사마·낙랑공으로 삼고 절을 주어 군을 그대로 맡겼다.
연의: 연의 105회
출전: 三國志 卷08 본 「權遣使張彌許晏等齎金玉珍寶立淵為燕王淵亦恐權遠不可恃且貪貨物誘致其使悉斬送彌晏等首」
위가 사자를 보내 소환하자 군을 갖추어 사자를 맞고 심지어 국중 손님 앞에서 험담하며, 경초 원년 관구검이 새서를 가지고 징소하자 요수에서 맞아 싸워 관구검이 불리해 돌아간다. 공손연은 스스로 연왕에 올라 백관을 둔다.
정사 공손연전: 사자가 이르자 공손연은 갑병으로 군진을 펼치고 나가 사자를 보고 국중 손님 앞에서 자주 나쁜 말을 했다. 경초 원년 유주자사 관구검 등이 새서를 가지고 공손연을 불렀다. 공손연이 군을 일으켜 요수에서 맞아 관구검 등과 싸워 관구검 등이 불리하여 돌아갔다. 공손연은 마침내 스스로 연왕이 되어 백관유사를 두었다.
연의: 연의 105회
출전: 三國志 卷08 본 「遂發兵逆於遼隧與儉等戰儉等不利而還淵遂自立為燕王置百官有司」
경초 2년 사마의가 요동을 치자 비연·양조 등이 요수에서 패하고, 양평이 장마 속에 포위되어 식량이 떨어져 사람이 서로 먹는 지경이 된다. 8월 큰 별이 떨어진 곳에서 성이 무너지자 아들 수와 수백 기로 탈출하다 참수된다.
정사 공손연전: 경초 2년 봄 태위 사마의를 보내 공손연을 정벌했다. 6월 군이 요동에 이르렀다. 공손연이 비연·양조 등에게 보기 수만으로 요수에서 20여 리의 해자로 막게 했으나 사마의의 군이 이를 깼고, 수산에서도 죽을 힘으로 싸웠으나 대패해 사마의가 성 아래 포위를 만들었다. 장마 30여 일에 요수가 불어 양평 성 아래까지 배가 들어왔고, 흙산·노·발석 연노로 성안을 쏘았다. 공손연이 궁박하고 식량이 떨어져 사람이 서로 먹었다. 8월 병인 밤 큰 별이 수산 동북에서 양평성 동남으로 떨어졌고 임오일 공손연의 무리가 무너져 아들 수와 수백 기로 포위를 뚫고 달아났으나 큰 군이 급히 쳐서 별이 떨어진 곳에서 공손연 부자를 베었다.
연의: 연의 106회
출전: 三國志 卷08 본 「壬午淵眾潰與其子脩將數百騎突圍東南走大兵急擊之當流星所墜處斬淵父子」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1 | 요수에서 사마의에 대항해 군을 요수에 두고 해자를 20여 리 둘렀으나 격파됐다(공손연전). |
| 무력 | 57 | 직접 무용 기록은 적다. 수백 기로 포위를 뚫고 달아나다 잡혔다(공손연전). |
| 지력 | 50 | 오와 위를 오가며 양단책을 썼으나 결국 둘 모두의 신뢰를 잃었다(공손연전). |
| 정치 | 50 | 숙부 공손공에게서 태수 자리를 탈취했다(공손연전). |
| 매력 | 50 | '평은 도(度)는 잔악하고 연은 가업을 이어 흉악함을 더해 가문을 엎었다'(공손연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공손연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