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기록 없음(장액 사람, 일명 다)
사망 197년 — 건안 2년(197) 전후 — 곽에서 부하 오습에게 피살. 전문은 「建安二年」 조목에 이어 적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2년 | 장안 | 후장군·미양후 | 기록 |
| 195년 | 장안 | 후장군 | 기록 |
| 196년 | 미 | 후장군 | 추정 |
| 197년 | 미 | 후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1년 | 기타·재야 | (미출사) | 불명 |
| 192년 | 기타·재야 | 후장군·미양후 | 기록 |
| 193~194년 | 기타·재야 | 후장군·미양후 | 불명 |
| 195년 | 기타·재야 | 후장군 | 기록 |
| 196년 | 기타·재야 | 후장군 | 추정 |
| 197년 | 기타·재야 | 후장군 | 기록 |
이각·번주·이몽·왕방과 장안을 포위해 10일 만에 함락한다.
정사 동탁전: 이각 등이 동탁의 옛 부곡 번주·이몽·왕방 등과 장안성을 합쳐 포위해 10일 만에 성이 무너졌고, 이후 이각은 거기장군, 곽사는 후장군·미양후가 되었다.
연의: 연의 9회
관련: 장안 공방(이각·곽사)
출전: 三國志 卷06 「與卓故部曲樊稠李蒙王方等合圍長安城」 / 三國志 卷06 「汜爲後將軍美陽侯」
이각과 서로 의심해 장안에서 싸우고 공경들이 화해하러 오자 모두 붙잡는다.
정사 동탁전: 곽사가 이각과 서로 의심해 장안 안에서 싸웠고, 이각이 공경을 곽사에게 보내 화해하려 하자 곽사가 모두 붙잡았으며 서로 연달아 공격해 죽은 이가 만 명 단위였다.
연의: 연의 13회
출전: 三國志 卷06 「汜與傕轉相疑戰鬬長安中」 / 三國志 卷06 「傕使公卿詣汜請和汜皆執之」
천자를 곽으로 데려가려다 양봉에게 패해 남산으로 달아난다.
정사 동탁전: 곽사는 다시 천자를 위협해 곽으로 가려 했고 천자가 양봉 영채로 달아나자 양봉이 곽사를 격파해 곽사는 남산으로 달아났다.
연의: 연의 14회
출전: 三國志 卷06 「郭汜復欲脅天子還都郿」 / 三國志 卷06 「汜走南山」
부하 오습에게 습격당해 곽에서 죽는다.
정사 동탁전: 곽사는 그 장수 오습에게 습격당해 곽에서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6 「汜爲其將五習所襲死於郿」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6 | 동탁 잔당으로 이각과 함께 장안을 함락하고 후장군·미양후가 되었으나 이각과 싸우다 쇠퇴했다(동탁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용·단독 전투 기록은 없다. |
| 지력 | 50 | 가후의 계책으로 모인 군을 이끌고 이각과 장안을 포위해 함락시켰다(동탁전). |
| 정치 | 50 | 이각과 서로 의심해 장안 안에서 싸우고 공경을 가두는 등 조정을 혼란케 했다(동탁전). |
| 매력 | 50 | 이각과의 갈등에서 아내의 이간에 의심이 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배송지 주 ― 典略).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곽사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