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5년경(추정) — 생년 불명(175년경 추정). 계산용 가정값이며 표시는 '추정'.
사망 231년 — 건흥 9년(231) 한중으로 옮겨 사 (이회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4년 | 한중 | 공조서좌·주부 — 마초를 설득 | 기록 |
| 215년 | 성도 | 별가종사 | 추정 |
| 216년 | 성도 | 별가종사 | 추정 |
| 217년 | 성도 | 별가종사 | 추정 |
| 218년 | 성도 | 별가종사 | 추정 |
| 219년 | 성도 | 별가종사 | 추정 |
| 220년 | 성도 | 별가종사 | 추정 |
| 221년 | 남중 | 교강도독·교주자사 겸임(평이현 주둔) | 기록 |
| 222년 | 남중 | 교강도독·교주자사 겸임(평이현 주둔) | 기록 |
| 223년 | 남중 | 교강도독 | 추정 |
| 224년 | 남중 | 교강도독 | 추정 |
| 225년 | 남중 | 교강도독 — 남정 때 곤명에서 포위당함 | 기록 |
| 226년 | 남중 | 안한장군·한흥정후 | 추정 |
| 227년 | 남중 | 안한장군·한흥정후 | 추정 |
| 228년 | 남중 | 안한장군·한흥정후 | 추정 |
| 229년 | 남중 | 건녕태수(교주 오에 귀속됨) | 기록 |
| 230년 | 한중 | 건녕태수 → 한중으로 이주 | 추정 |
| 231년 | 한중 | 건녕태수 → 한중으로 이주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0~212년 | 유장·익주 | 군 독우 → 주에 천거 | 불명 |
| 213년 | 촉한 | 군사를 칭해 선주에게 가 면죽에서 만남 | 불명 |
| 214년 | 촉한 | 공조서좌·주부 — 마초를 설득 | 기록 |
| 215~220년 | 촉한 | 별가종사 | 추정 |
| 221~222년 | 촉한 | 교강도독·교주자사 겸임(평이현 주둔) | 기록 |
| 223~224년 | 촉한 | 교강도독 | 추정 |
| 225년 | 촉한 | 교강도독 — 남정 때 곤명에서 포위당함 | 기록 |
| 226~228년 | 촉한 | 안한장군·한흥정후 | 추정 |
| 229년 | 촉한 | 건녕태수(교주 오에 귀속됨) | 기록 |
| 230~231년 | 촉한 | 건녕태수 → 한중으로 이주 | 추정 |
선주가 가맹에서 돌아서 유장을 치자 유장이 반드시 패하리라 보고 군사를 칭해 북으로 선주를 찾아 면죽에서 만난다. 이어 낙성을 따라가고 한중에 가서 마초와 교호해 마초가 복종한다.
정사 이회전: 이회가 주에 천거되어 가는 길 중에 선주가 가맹에서 돌아와 유장을 치는 것을 알고, 유장이 반드시 패하고 선주가 이루리라 보아 군의 사자라 칭하고 북으로 선주를 찾아 면죽에서 만났다. 선주가 기뻐해 낙성까지 따르게 하고 이회를 한중에 보내 마초와 교호하게 하니 마초가 명에 따랐다.
연의: 연의 65회
출전: 三國志 卷43 본 「恢知璋之必敗先主必成也乃託名郡使北詣先主遇於綿竹先主嘉之從至洛城遣恢至漢中交好馬超超遂從命」
제갈량이 남정할 때 이회는 월휴로 오지 않고 건녕으로 길을 따라 들어가다 곤명에서 남인에게 포위된다. '관군은 군량이 떨어져 철수하려 하니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 너희와 의논하고자 한다'고 속여 포위를 늦춘 뒤 출격해 반강까지 추격한다.
정사 이회전: 선주 사후 고정이 월휴에서, 옹개가 건녕에서, 주포가 장가에서 반란했다. 승상 제갈량이 남정하며 먼저 월휴로 나갔고 이회는 길을 따라 건녕으로 향했다. 여러 현이 크게 규합해 이회군을 곤명에서 포위했으나 이회는 병력이 적고 적은 배인데 제갈량의 소식도 없어 남인에게 '관군은 군량이 떨어져 철수하려 하고 나도 오래 고향을 떠나 돌아왔으나 다시 북으로 가지 못해 너희와 함께 계책을 세우려 한다'고 거짓으로 알렸다. 남인이 믿어 포위가 느슨해지자 이회가 출격해 크게 깨고 추격해 남쪽으로 반강, 동쪽으로 장가에 이르러 제갈량과 호응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3 본 「恢眾少敵倍又未得亮聲息繪謂南人曰官軍糧盡欲規退還」
남이가 다시 반란해 수장을 죽이자 직접 토벌해 악당을 쓸어내고 호수를 성도로 옮기며 소·말·금은·가죽을 징수해 군자에 충당한다. 건흥 7년 교주가 오에 귀속되어 교주자사에서 해임되고 건녕태수가 된다.
정사 이회전: 남토가 평정된 뒤 이회는 군공이 가장 많아 한흥정후에 봉해지고 안한장군을 더했다. 군이 돌아간 뒤 남이가 다시 반란해 수장을 죽이자 이회가 직접 토벌해 악당을 모두 쓸어내고 우두머리들을 성도로 옮겼으며, 수·복에게서 소·말·금은·무소가죽을 거둬 군자에 충당해 당시 비용이 모자라지 않았다. 건흥 7년 교주가 오에 속하게 되어 이회의 자사직을 해제하고 건녕태수를 맡겨 본군에 살게 했다. 9년에 한중으로 이주해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3 본 「恢身往撲討鋤盡惡類徙其豪帥於成都賦出叟濮耕牛戰馬金銀犀革充繼軍資於時費用不乏」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6 | 남정 때 곤명에서 남인 포위를 계책으로 깨고 반강까지 추격, 제갈량과 호응했다(이회전). |
| 무력 | 64 | 남이를 직접 토벌해 악질을 쓸어냈다(이회전). |
| 지력 | 73 | 제갈량의 소식이 없을 때 '관군의 군량이 떨어져 철수하려 한다'고 속여 포위를 느슨하게 한 뒤 출격했다(이회전). |
| 정치 | 61 | 남중 호수를 성도로 옮기고 소·말·금은·무소가죽을 징수해 군자에 충당했다(이회전). |
| 매력 | 64 | 선주가 '내 본의는 이미 경에게 있다'며 곧 교강도독으로 삼았다(이회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이회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