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립(廖立)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촉한출생 181년경(추정)사망 234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181년경(추정) — 생년 불명(181년경 추정, 장사태수가 된 때 '30세 미만'이라는 본문).

사망 234년 — 사망 연도 불명 — 제갈량의 사망 소식을 들은 234년을 마지막 기록으로 두고 이후 유배지에서 마쳤다(요립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16년강주파군태수추정
217년강주파군태수추정
218년강주파군태수추정
219년성도시중추정
220년성도시중추정
221년성도시중추정
222년성도시중추정
223년성도장수교위추정
224년성도장수교위추정
225년성도장수교위추정
226년성도장수교위추정
227년성도장수교위추정
228년문산서인(문산군 유배)기록
229년문산서인(문산군 유배)추정
230년문산서인(문산군 유배)추정
231년문산서인(문산군 유배)추정
232년문산서인(문산군 유배)추정
233년문산서인(문산군 유배)추정
234년문산서인(문산군 유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8년촉한종사(선주가 형주목으로 초빙)불명
209~214년촉한장사태수(30세 미만)불명
215년촉한장사태수 → 손권의 남3군 기습으로 탈출불명
216~218년촉한파군태수추정
219~222년촉한시중추정
223~227년촉한장수교위추정
228년촉한서인(문산군 유배)기록
229~233년촉한서인(문산군 유배)추정
234년촉한서인(문산군 유배)기록

나온 사건·전투

215년 · 장사태수 → 손권의 남3군 기습으로 탈출 · 패주

손권이 여몽을 보내 남3군을 기습하자 맨몸으로 달아나 선주에게 돌아가 파군태수가 된다. 건안 20년.

정사 요립전: 건안 20년 손권이 여몽을 보내 남3군을 갑자기 습격했을 때 요립은 몸만 빠져나와 선주에게 돌아갔다. 선주는 본래 알고 대접하던 터라 크게 꾸짖지 않고 파군태수로 삼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0 본 「權遣呂蒙奄襲南三郡立脫身走自歸先主」

228년 · 서인(문산군 유배) · 강등

승상 연리 이소·장완에게 군신을 비방한 말이 제갈량에게 보고되어 폐서인되고 문산군으로 옮겨진다. 연도는 본문에 없어 건흥 초(228년경)로 추정.

정사 요립전: 요립이 이소·장완 앞에서 선주의 한중 포기와 관우의 패배를 비판하고, 향랑·문공·곽연장·왕련 등을 낮췄다. 제갈량이 '요립이 스스로 높다 여겨 인물들을 헐뜯는다'는 표를 올려 서인으로 폐하고 문산군으로 옮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0 본 「於是廢立為民徙汶山郡」

234년 · 서인(문산군 유배) · 전기

유배지에서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끝내 오랑캐 옷깃을 입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린다.

정사 요립전: 요립이 제갈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나는 끝내 좌임(左衽) 하겠구나'라고 탄식했다. 뒤에 감군 강유가 편군을 이끌고 문산을 지날 때 요립을 만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0 본 「聞諸葛亮卒垂泣歎曰吾終為左衽矣」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 지휘 기록 없음.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 없음.
지력73제갈량이 손권에게 '방통과 요립은 초 지역의 좋은 재목'이라 평했다(요립전).
정치61장사태수로 발탁되었으나 손권의 남3군 기습에 맨몸으로 도망쳤다(요립전).
매력50자신이 제갈량의 부관에 맞다고 여겨 이엄 아래의 자리에 불만을 품고 군신을 비방해 폐해졌다(요립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요립의 이동 경로

촉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