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5년 — 가화 3년(234) 졸 향년 40세로 역산
사망 234년 — 가화 3년 졸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9년 | 하구 | 양무중랑장·강하태수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5~218년 | 기타·재야 | (손정의 넷째 아들, 손교의 아우) | 불명 |
| 219년 | 오 | 양무중랑장·강하태수 | 추정 |
| 220~225년 | 오 | 양무중랑장·강하태수 | 불명 |
| 226~234년 | 오 | 양위장군·사선후 | 불명 |
형 손교가 죽자 병력을 이어받아 양무중랑장으로 강하태수를 겸한다.
정사 손환전: 형 손교가 이미 죽자 대신 병력을 통솔했고 양무중랑장으로 강하태수를 겸했다. 재임 1년 동안 손교의 옛 방식을 따랐다. 연도는 손교 사망(219).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兄皎既卒,代統其眾」
황무 5년 석양을 칠 때 지주로서 선우단을 보내 회수 길을 끊고 스스로 선봉이 되어 고성을 항복시킨다.
정사 손환전: 황무 5년 손권이 석양을 공격하자 손환이 지주로서 소속 장군 선우단에게 5천을 주어 먼저 회수 길을 끊게 하고 자신은 오석·장량 5천을 이끌고 군의 선봉이 되어 고성을 항복시키고 세 장수를 얻었다. 철군 때 손권이 지나가며 손환의 군진 정돈을 보고 「처음엔 둔한 줄 알았다」며 탄식했고, 양위장군·사선후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權攻石陽,奐以地主」
가화 3년 40세로 죽는다.
정사 손환전: 가화 3년 40세로 졸했고 아들 손승이 대신 병력을 거느렸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年四十」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60 | 석양 전투에서 지주(地主)로서 선우단을 보내 회수 길을 끊고 스스로 선봉이 되어 고성을 항복시켰다(손환전). |
| 지력 | 58 | 황무 5년 손권이 군진의 정돈됨을 보고 「처음엔 둔한 줄 알았으나 군 다스림에 따를 장수가 드물다」며 근심을 덜었다(손환전). |
| 정치 | 70 | 손교의 옛 방식을 따르며 유정·이윤·오석·장량 등을 예우하고 좋은 말은 받아들였다(손환전). |
| 매력 | 64 | 유생을 아껴 부곡 자제에게 학업을 시켜 벼슬한 이가 수십 명이었다(손환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손환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