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55년 — 184년 이전 연도 칸은 만들지 않았다
사망 192년 — 초평 3년 현산(峴山, 양양 부근)에서 황조 군사의 화살에 맞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84년 | 완 | 좌군사마(주준 휘하) | 기록 |
| 186년 | 장안 | 참군사(장온 휘하) | 기록 |
| 191년 | 낙양 | 파로장군·예주자사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년 | 오 | 좌군사마(주준 휘하) | 기록 |
| 185년 | 오 | 좌군사마(주준 휘하) | 불명 |
| 186년 | 오 | 참군사(장온 휘하) | 기록 |
| 187~189년 | 오 | 장사태수 | 불명 |
| 190년 | 오 | 파로장군·예주자사 | 불명 |
| 191년 | 오 | 파로장군·예주자사 | 기록 |
| 192년 | 오 | 파로장군·예주자사 | 불명 |
황건 토벌 때 완성에 먼저 올라가 성을 깬다.
정사 손견전: 완성에서 직접 한 면을 맡아 성에 먼저 올랐다. 별부사마에 임명.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완성 공방(황건)
출전: 三國志 卷46 「登城先入」
장온의 서정에 참군으로 따라가 동탁을 군법으로 베라고 권한다.
정사 손견전: 동탁이 소환에 늦게 오자 군법으로 베라고 장온에게 권했으나 장온은 따르지 않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6 「宜以召不時至」
장사태수로 구성(區星)을 깨뜨린다.
정사 손견전: 장사 구성이 성읍을 에워싸자 한 달 안에 깨뜨리고, 영릉·계양의 무리까지 토벌해 오후(烏程侯)에 봉해졌다. 연도는 손견전 본문에 없고 연대는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6 「區星」
남양태수 장자(張咨)를 군문에서 베고 노양에서 원술과 만나 파로장군이 된다.
정사 손견전: 군수물자를 갖추지 않았다 하여 장자를 군문에서 베었고, 노양에서 원술이 표를 올려 손견을 파로장군·예주자사로 삼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6 「行破虜將軍」
노양성에서 동탁의 기병 수만을 침착하게 맞아 돌려보낸다.
정사 손견전: 동탁이 보기병 수만을 보내자 손견은 술을 돌리며 군진을 정돈해 적이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6 「卓兵見堅士衆甚整」
양인에서 동탁군을 크게 깨고 도독 화웅의 목을 벤다.
정사 손견전: 양인에서 합전해 동탁군을 크게 깨고 그 도독 화웅 등을 효수했다.
연의: 연의 5회 — 연의 5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관련: 양인 전투
출전: 三國志 卷46 「梟其都督華雄」
낙양에 들어가 황릉을 수리하고 노양으로 돌아온다.
정사 손견전: 낙에 이르러 여러 능을 고치고 동탁이 파헤친 곳을 메웠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6 「修諸陵」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치다 현산에서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에 죽는다.
정사 손견전: 번·등 사이에서 황조를 깨고 양양을 포위했으나 말 한 필로 현산을 지나다가 황조 군사의 화살에 죽었다.
연의: 연의 7회 — 연의 7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관련: 현산 전투(손견 전사)
출전: 三國志 卷46 「爲祖軍士所射殺」
정사 정사에는 호뢰관에서 연합군과 동탁군이 싸운 기록이 없다. 무제기는 원소 등이 산동에서 일어났으나 동탁의 병세가 강해 먼저 진군하는 자가 없었다고 적는다. 화웅을 벤 것은 연의에서 관우(온주참화웅)로 그려지나 정사에서는 손견이 양인에서 화웅을 벤다. 삼영전여포도 정사에 없다.
연의: 연의 5~6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2 | 노양에서 동탁의 보기병 수만이 오자 담소하며 군진을 정돈해 적이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났다(손견전). |
| 무력 | 93 | 황건 토벌 때 완성에 먼저 올라갔고, 양인에서 동탁군 도독 화웅을 베었다(손견전). |
| 지력 | 68 | 장온에게 동탁의 세 가지 죄를 들어 참하라고 권했다(손견전). |
| 정치 | 61 | 장사태수로 구성 안팎의 구성(區星)을 한 달 사이에 깨뜨리고 세 군을 안정시켰다(손견전). |
| 매력 | 77 | 고향 소년과 회수·사수의 정병이 따라나섰고 군중이 따랐다(손견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손견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