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00년 — 「손권이 통사한 뒤 소의중랑장으로 옮겼고 집에서 졸」로만 적혀 연도 없음. 200은 자리값
연도별 위치를 정할 기록이 데이터에 없습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195년 | 오 | (고향 종실 결집) | 불명 |
| 196~199년 | 오 | (손책의 회계 공략에 합류) | 불명 |
| 200년 | 오 | 소의중랑장 | 불명 |
손견이 거병하자 고향과 종실 5~6백 명을 모아 근거지를 지키고 무리가 따른다.
정사 손정전: 손견이 처음 거병할 때 손정은 고향 사람과 종실 5~6백 명을 모아 보루로 삼았고 무리가 모두 따랐다. 연도는 손견의 거병(190)으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靜糾合鄉曲及宗室五六百人以為保障」
손책이 고릉에서 왕랑에게 막히자 조독 길로 돌아 기습하자고 건의해 회계를 평정한다.
정사 손정전: 손책이 유요를 깨고 회계로 진격할 때 손정이 가족을 이끌고 전당에서 손책과 만났다. 태수 왕랑이 고릉에서 막아 손책이 여러 번 물을 건너도 이기지 못하자 손정은 조독 길이 요충이라 이를 따라 내지를 차지해야 한다 했고, 손책이 군중에 물이 탁해 항아리를 마련하라는 거짓 명령을 내려 밤에 군을 나누어 조독 길로 고천둔을 기습해 왕랑이 크게 놀랐다. 주흔 등을 깨고 회계를 평정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查瀆南去此數十里」
손책이 중임을 맡기려 했으나 선영과 종족을 그리워해 출사하지 않고 집을 지키기를 청한다.
정사 손정전: 손책이 손정을 분무교위로 삼아 중임을 맡기려 했으나 손정은 선영과 종족을 사랑해 출사를 즐기지 않고 남아 지키기를 청해 손책이 따랐다. 손권이 통사하자 소의중랑장으로 옮겼으나 집에서 졸했다. 다섯 아들: 손고(暠)·손유·손교·손환·손겸.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權統事,就遷昭義中郎將,終於家」
정사 손책전: 195년 손책이 원술의 허락을 얻어 군 1천여 명과 기병 수십 필, 빈객 수백으로 장강을 건너 역양에 이르렀을 때 무리가 5~6천이 되었다. 곡아에서 유요를 몰아내고 오군의 엄백호 등을 깼으며, 196년 회계로 건너 태수 왕랑을 깨고 강동 여러 군을 평정했다. 연의 15회는 신정령의 태사자와의 일기토, 소패왕 별명을 더한다.
연의: 연의 15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지력 | 70 | 왕랑이 고릉에서 막자 손책에게 조독 길로 우회해 기습하자고 계책을 올렸고, 손책이 그대로 해 회계를 평정했다(손정전). |
| 정치 | 50 | 관직에 오르기보다 선영과 종족 곁에 남기를 청했다(손정전). |
| 매력 | 58 | 손견이 거병하자 고향과 종실 5~6백 명을 모아 근거지를 지켰고 무리가 따랐다(손정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손정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