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75년
사망 210년 — 건안 15년 파구(길 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5년 | 역양 | (손책 합류) | 기록 |
| 196년 | 오(오군) | 건위중랑장 | 기록 |
| 199년 | 환성 | 건위중랑장 | 기록 |
| 200년 | 오(오군) | 중호군 | 기록 |
| 208년 | 적벽 | 편장군(도독) | 기록 |
| 209년 | 강릉 | 남군태수 | 기록 |
| 210년 | 파구 | 남군태수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4년 | 기타·재야 | (여강 서현 출신, 어린 시절) | 불명 |
| 195년 | 오 | (손책 합류) | 기록 |
| 196년 | 오 | 건위중랑장 | 기록 |
| 197~198년 | 오 | 건위중랑장 | 불명 |
| 199년 | 오 | 건위중랑장 | 기록 |
| 200년 | 오 | 중호군 | 기록 |
| 201~207년 | 오 | 중호군 | 불명 |
| 208년 | 오 | 편장군(도독) | 기록 |
| 209~210년 | 오 | 남군태수 | 기록 |
역양에서 손책을 맞아 손씨 군의 도강을 돕는다.
정사 주유전: 손책이 동으로 건너올 때 주유가 군을 이끌고 맞이했다.
연의: 연의 15회 — 연의 15회가 같은 일을 다룬다.
출전: 三國志 卷54 「歷陽」
환성을 함락하고 손책과 교씨 자매를 맞는다(소교).
정사 주유전: 환성을 깨고 교공의 두 딸을 얻어 손책이 대교, 주유가 소교를 취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환성·사선 전투
출전: 三國志 卷54 「橋公」
조조군의 약점을 짚어 손권에게 결전을 권한다.
정사 제갈량전: 시상에서 손권을 설득했고 손권은 주유·정보·노숙에게 수군 3만을 주어 제갈량과 함께 유비에게 보냈다.
연의: 연의 43~44회 — 군유 설전은 연의 43~44회의 창작이다.
관련: 제갈량, 강동에서 손권을 설득
수군 3만으로 황개의 화공을 써 조조를 대파한다.
정사 무제기·주유전·황개전·오주전: 적벽에서 조조군이 크게 패했다. 화공은 정사에도 있다(황개의 거짓 항복·화선).
연의: 연의 45~49회 — 방통의 연환계, 제갈량이 칠성단에서 동남풍을 빌린 일, 황개의 고육계는 연의 45~49회의 창작이다(전투 패널의 「연의 창작」 참고).
관련: 적벽대전
강릉에서 조인과 1년을 맞서다 화살을 맞고도 군을 순시한다.
정사 주유전: 209년 강릉을 포위해 조인을 물러가게 했다. 오른 옆구리에 화살을 맞았다.
연의: 연의 51회 — 연의 51회가 같은 싸움을 다룬다.
관련: 강릉 공방(주유 대 조인)
출전: 三國志 卷54 「流矢中右脅」
파구에서 병으로 죽는다.
정사 주유전: 210년 파구에서 병으로 죽었다(36세).
연의: 연의 57회 — 연의 57회는 제갈량에게 세 번 속아 분사한 것으로 그린다. 정사에 없다.
출전: 三國志 卷54 「巴丘」
정사 손책전: 195년 손책이 원술의 허락을 얻어 군 1천여 명과 기병 수십 필, 빈객 수백으로 장강을 건너 역양에 이르렀을 때 무리가 5~6천이 되었다. 곡아에서 유요를 몰아내고 오군의 엄백호 등을 깼으며, 196년 회계로 건너 태수 왕랑을 깨고 강동 여러 군을 평정했다. 연의 15회는 신정령의 태사자와의 일기토, 소패왕 별명을 더한다.
연의: 연의 15회
정사 오주전: 208년 봄 손권이 황조를 다시 쳤다. 황조가 먼저 주병(舟兵)으로 맞섰으나 도위 여몽이 선봉을 깼고 능통·동습 등이 전력을 다해 공격해 성을 도륙했다. 황조는 몸만 빠져나가다 기병 풍칙에게 목이 베였고 남녀 수만 구를 포로로 했다. 동습전은 황조가 면구에서 몽충 두 척으로 양쪽을 막고 돌로 닻을 매어 천 명이 쇠뇌를 쏘았으나, 동습·능통이 결사 백 명으로 큰 배를 타고 몽충 속으로 뚫고 들어가 닻줄을 끊어 길을 열었다고 적는다. 연의 38회는 이 싸움을 건안 8년(203)으로 앞당겨 능조가 감녕의 화살에 죽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8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96 | 적벽(208)에서 수군 3만으로 조조의 대군을 깨뜨렸다(주유전). |
| 무력 | 66 | 강릉에서 화살에 맞아 쓰러지고도 일어나 군영을 순시했다(주유전). |
| 지력 | 94 | 조조의 약점(후방의 마초·한수, 수전 불리, 겨울 풀 부족 등)을 짚어 결전을 권했다(주유전). |
| 정치 | 78 | 손책 사후 장소와 함께 손권의 계승을 안정시켰다(주유전). |
| 매력 | 93 | 정보가 '공근과 사귀면 진한 술에 취한 듯하다'고 했다(배송지 주 ― 江表傳).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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