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초 장수 항연의 아들, 항우의 숙부).
사망 -208년 — 2세 2년 — 정도에서 장함의 야습에 크게 져 전사(項羽本紀: 「大破之定陶項梁死」). 달은 원문에 없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오중 | 회계수→무신군(초 상주국) | 기록 |
| -208년 | 호릉 | 회계수→무신군(초 상주국)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208년 | 초 | 회계수→무신군(초 상주국) | 기록 |
회계 수 은통이 거병을 권하자 항우로 하여금 그를 베게 하고 오중의 병사 8천을 얻는다.
정사 항우본기: 2세 원년 9월 회계수 통이 항량에게 거병을 말하자, 항량이 항우를 시켜 수를 베고 인수를 찼다. 오중의 호걸을 교위·후·사마로 나누고 정병 8천을 얻어 스스로 회계수가 되었다.
출전: 史記 卷007 「籍遂拔劍斬守頭」 / 史記 卷007 「得精兵八千人」
진승의 이름으로 상주국에 임명되자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고, 진영·경포의 군을 합쳐 6~7만으로 하비에 주둔한다.
정사 항우본기: 소평이 진왕의 명으로 항량을 초왕 상주국에 임명했다. 항량이 8천으로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고 진영·경포·포 장군이 병력을 붙여 6~7만이 되어 하비에 주둔했다.
출전: 史記 卷007 「拜梁為楚王上柱國」 / 史記 卷007 「凡六七萬人軍下邳」
진가가 세운 경구를 쳐서 깨고 설에서 회의해 초 회왕의 손자 심을 왕으로 세운다.
정사 항우본기: 항량이 진승을 배반한 진가를 호릉까지 쫓아 항복받고, 설에서 범증의 말에 따라 회왕의 손자 심을 찾아 초회왕으로 세워 우태에 도읍하고 스스로 무신군을 칭했다.
출전: 史記 卷007 「乃求楚懷王孫心民間」 / 史記 卷007 「項梁自號為武信君」
동아를 구원해 진군을 대파하고 서쪽으로 정도까지 두 번 진군을 깬다.
정사 항우본기: 항량이 전영·사마 용저와 동아를 구원해 진군을 크게 깼고, 서쪽으로 정도에 이르기까지 진군을 두 번 격파했다. 이 승리로 교만한 기색을 보였다.
관련: 동아 전투
출전: 史記 卷007 「大破秦軍於東阿」 / 史記 卷007 「再破秦軍」
정도에서 장함의 야습을 받아 크게 져 전사한다.
정사 항우본기: 송의가 교만함을 경고했으나 항량은 듣지 않았다. 진이 병력을 장함에게 더해 초군을 정도에서 크게 깼고 항량은 죽었다.
관련: 정도 전투
출전: 史記 卷007 「項梁弗聽」 / 史記 卷007 「大破之定陶項梁死」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4 | 동아에서 진군을 대파하고 정도에서 두 번 깼으나 교만해진 뒤 장함에게 대패해 죽었다(항우본기). |
| 무력 | 82 | 직접 무용을 보인 장면은 적고 항우가 하는 싸움이 주로 기록된다(항우본기). |
| 지력 | 73 | 범증의 말을 받아 회왕 손심을 세워 초의 명분을 얻었으나, 송의의 경고는 듣지 않았다(항우본기). |
| 정치 | 61 | 회계 수를 죽이고 오중의 호걸을 교위·사마로 나누어 배치하는 등 병사를 편제했다(항우본기). |
| 매력 | 79 | 초나라 명문 장수 집안으로 진영·경포·포 장군 등이 병력을 맡겼다(항우본기).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항량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