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포(季布)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몰년 불명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몰년 원문에 없음. 초나라 사람(「季布者楚人也」), 협기로 이름이 났다

사망 몰년 불명 — 사망 연도 원문에 없음. 문제 때 하동 태수까지 지낸 것으로 전한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2년복양낭중→(효혜 때)중랑장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3년초항우 휘하 장수(연대 불명)불명
-202년한낭중→(효혜 때)중랑장기록
-201~-195년한낭중→(효혜 때)중랑장불명

나온 사건·전투

-202년 · 낭중→(효혜 때)중랑장

항우가 망하자 고조가 천금을 걸고 계포를 찾고 숨겨 주면 삼족을 멸한다 했다. 계포는 복양의 주씨 집에 숨고, 주씨의 계책으로 머리를 깎고 쇠고랑을 채워 갈옷을 입은 노비로 위장해 노의 주가에게 팔린다.

정사 계포전: 항우가 멸망하자 고조가 천금으로 계포를 구하며 숨겨 주는 자는 삼족에 죄를 묻겠다 했다. 계포는 복양 주씨에게 숨었고, 주씨가 머리를 깎고 쇠고랑을 채운 뒤 광류거에 실어 노의 주가에게 팔게 했다. 주가는 계포인 줄 알고 사들여 밭에 두었다.

출전: 史記 卷100 「及項羽滅髙祖購求布千金敢有舍匿罪及三族」 / 史記 卷100 「乃髡鉗季布衣褐衣置廣柳車中」 / 史記 卷100 「朱家心知是季布乃買而置之田」

-202년 · 낭중→(효혜 때)중랑장

주가가 낙양에서 등공(하후영)을 설득해 사면을 얻어낸다. 계포는 고조를 알현해 사죄하고 낭중이 된다. (사면의 연도는 원문에 없어 같은 해에 둠)

정사 계포전: 주가가 낙양에 가서 여음후 등공에게 「臣各爲其主用季布爲項籍用職耳」라며 설득했고 등공이 때를 보아 고조에게 말하니 고조가 계포를 사면했다. 계포가 불려 사죄하자 낭중에 임명되었다.

출전: 史記 卷100 「臣各爲其主用季布爲項籍用職耳」 / 史記 卷100 「上乃赦季布」 / 史記 卷100 「季布召見謝上拜爲郎中」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6항적의 장수로 군을 이끌고 여러 번 한왕을 궁지에 몰았다(「項籍使將兵數窘漢王」, 계포전).
무력86태사공은 직접 군을 이끌고 깃발을 뽑은 일이 여러 번이라며 「壯士」라 평했다(「身屨軍搴旗者數矣」).
지력62주가·등공을 통해 사면을 얻을 때까지 몸을 숨기고 머리를 깎아 노비로 위장했다(계포전).
정치59하동 태수로 일했고, 번쾌의 흉노 정벌 논의를 막으며 「樊噲可斬也」라 간했다(계포전, 효혜 때).
매력87「得黃金百斤不如得季布一諾」라는 초 사람 속담이 있을 만큼 신의가 알려졌고 주가가 목숨을 걸고 숨겨 주었다(계포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계포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