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劉邦)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256년사망 -195년기록 연도 15해

생몰

출생 -256년 — 본문에 나이 기록 없음 — 주석(皇甫謐)에 따른 통설 추정. 다른 설(-247)도 있다

사망 -195년 — 高祖 12년 4월 갑진(『史記』高祖本紀: 「四月甲辰高祖崩長樂宮」). 서기 환산은 자치통감 기준 -195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패현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기록
-208년풍읍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기록
-207년탕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기록
-206년패상한왕(파·촉·한중 봉)기록
-205년낙양한왕기록
-204년형양한왕기록
-203년광무한왕기록
-202년고릉황제(고조)기록
-201년진(陳)황제(고조)기록
-200년평성황제(고조)기록
-199년백인황제(고조)기록
-198년장안황제(고조)기록
-197년한단황제(고조)기록
-196년동원황제(고조)기록
-195년회추황제(고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7년기타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기록
-206년한한왕(파·촉·한중 봉)기록
-205~-203년한한왕기록
-202~-195년한황제(고조)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 · 기병

진승이 일어나자 패현의 부로가 현령을 죽이고 유계를 패공으로 세운다.

정사 고조본기: 진승 봉기 뒤 패현 현령이 흔들리자 소하·조참이 유계를 불렀고, 부로들이 현령을 죽이고 유계를 패공으로 세워 황제와 치우에게 제사했다. 붉은 깃발을 쓰고 소년 2~3천을 거두어 호릉·방여를 치고 풍을 지켰다.

출전: 史記 卷008 「乃立季為沛公」 / 史記 卷008 「祠黃帝祭蚩尤於沛庭」

-208년 · 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

옹치가 풍을 들어 위에 붙고, 패공은 항량에게 가서 병력 5천을 받는다.

정사 고조본기: 옹치가 풍을 지키다 위 주시의 회유로 배반했다. 패공이 되받으려다 병이 나 패로 돌아왔고, 유(留)의 경구를 찾아가다가 설에 있던 항량을 만나 졸병 5천과 오대부 장수 10명을 받았다.

출전: 史記 卷008 「雍齒雅不欲屬沛公」 / 史記 卷008 「項梁益沛公卒五千人」

-207년 · 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

정도에서 항량이 죽자 탕군장·무안후가 되고, 회왕의 약속에 따라 서쪽으로 관중을 향한다.

정사 고조본기: 항량이 정도에서 죽자 패공은 탕에 주둔했고, 회왕이 팽성으로 옮긴 뒤 패공을 탕군장으로 삼아 무안후에 봉했다. 「먼저 관중을 평정하는 자를 왕으로 삼는다」고 약속하고 서쪽으로 땅을 공략하게 했다.

관련: 정도 전투

출전: 史記 卷008 「以沛公為碭郡長封為武安侯」 / 史記 卷008 「先入定關中者王之」

-207년 · 패공(패현 봉기, 항량 휘하)

고양에서 역이기가, 이어 장량을 만나 진류를 습격하고 낙양·남양을 거쳐 관중으로 나아간다.

정사 고조본기: 창읍에서 팽월을 만나 함께 싸웠고, 고양의 감문 역이기가 찾아와 진류 습격을 권해 진류의 곡식을 얻었다. 양웅을 백마에서 깨고 영양을 도륙했으며 장량과 함께 한 땅 환원을 공략했다. 완에서는 진회의 말대로 항복을 받고 서쪽으로 나아갔다.

출전: 史記 卷008 「食其說沛公襲陳留得秦積粟」 / 史記 卷008 「因張良遂略韓地轘轅」 / 史記 卷008 「乃以宛守為殷侯」

-206년 · 한왕(파·촉·한중 봉) · 대승

패상에 먼저 이르러 진왕 자영의 항복을 받고 함양에 들어가 법 3장을 약속한다.

정사 고조본기: 한 원년 10월 패공의 군이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자영이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함양에 들어갔으나 번쾌·장량이 말려 궁실 재보를 봉하고 패상으로 돌아와, 부로에게 「殺人者死傷人及盜抵罪」 3장만 남기고 진법을 없앤다고 약속했다.

관련: 무관 입관

출전: 史記 卷008 「漢元年十月沛公兵遂先諸侯至霸上」 / 史記 卷008 「殺人者死傷人及盜抵罪」

-206년 · 한왕(파·촉·한중 봉)

홍문에서 항우에게 사죄하고 위기를 넘긴다.

정사 고조본기: 항우가 함곡관을 깨고 희에 이르러 공격 태세를 취하자(조무상의 고변), 항백이 장량을 살리려 항우를 달랬다. 패공은 백여 기로 홍문에 가서 사과했고 번쾌·장량 덕에 풀려나 돌아와 조무상을 베었다.

관련: 홍문 연회

출전: 史記 卷008 「沛公從百餘騎驅之鴻門見謝項羽」 / 史記 卷008 「歸立誅曹無傷」

-206년 · 한왕(파·촉·한중 봉)

항우가 서초패왕이 되어 패공을 한왕으로 봉하고, 한왕은 남정으로 간다.

정사 고조본기: 정월 항우가 서초패왕을 칭하고 약속을 깨 패공을 한왕으로 삼아 파·촉·한중을 주고 남정에 도읍하게 했다. 4월 희하에서 군이 풀려 제후가 각자 나라로 갔고, 한왕은 두남에서 식중으로 들어간 뒤 잔도를 불태웠다.

출전: 史記 卷008 「更立沛公為漢王王巴蜀漢中都南鄭」 / 史記 卷008 「去輒燒絕棧道」

-206년 · 한왕(파·촉·한중 봉) · 대승

한신의 계책으로 고도를 거쳐 돌아 나와 진창에서 장함을 깨고 옹 땅을 평정한다.

정사 고조본기: 8월 한왕이 한신의 계책으로 고도를 따라 나와 옹왕 장함을 습격했다. 장함이 진창에서 맞섰으나 옹병이 패했고, 호치를 거쳐 폐구로 달아났다. 한왕이 옹 땅을 평정하고 폐구를 포위했다.

관련: 진창 암도

출전: 史記 卷008 「漢王用韓信之計從故道還襲雍王章邯」 / 史記 卷008 「漢王遂定雍地」

-205년 · 한왕

낙양에서 의제의 죽음을 알고 발상한 뒤 제후를 모아 팽성으로 간다.

정사 고조본기: 2년 3월 임진에서 황하를 건너 하내를 평정하고 낙양에 이르렀다. 신성 삼로 동공이 의제의 죽음을 알리자 한왕은 소매를 걷고 크게 울며 발상하고 제후에게 초를 치자고 알렸다. 이어 다섯 제후의 군사를 모아 팽성에 들어갔다.

관련: 팽성 전투

출전: 史記 卷008 「新城三老董公遮說漢王以義帝死故」 / 史記 卷008 「漢王以故得劫五諸侯兵遂入彭城」

-205년 · 한왕 · 대패

팽성에서 항우에게 크게 져 수수에서 군이 무너진다.

정사 고조본기: 항우가 제에서 돌아와 노·호릉·소를 거쳐 팽성 영벽 동쪽 수수에서 한군을 크게 깼다. 사졸이 많이 죽어 수수가 흐르지 못했고, 한왕의 부모·처자가 항우군에 인질로 잡혔다.

관련: 팽성 전투

출전: 史記 卷008 「與漢大戰彭城靈壁東睢水上大破漢軍」 / 史記 卷008 「睢水為之不流」

-205년 · 한왕

태자를 세우고 역양을 지키게 하며, 폐구를 수공해 장함을 자살하게 한다.

정사 고조본기: 6월 효혜를 태자로 세워 역양을 지키게 하고, 물을 끌어 폐구를 잠기게 하자 폐구가 항복하고 장함은 자살했다. 폐구를 괴리로 고쳤다.

관련: 장한 폐구 포위와 자결

출전: 史記 卷008 「引水灌廢丘廢丘降章邯自殺」 / 史記 卷008 「令太子守櫟陽」

-204년 · 한왕

형양 남쪽에 용도를 쌓아 오창 곡식을 취하며 항우와 1년 넘게 대치한다.

정사 고조본기: 한왕은 형양 남쪽에 황하까지 용도를 이어 쌓아 오창의 곡식을 취했고 항우와 1년 넘게 서로 버텼다. 용도를 침탈당해 식량이 모자라자 진평의 이간책을 써 항우가 아부(범증)를 의심하게 했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8 「筑甬道屬之河以取敖倉」 / 史記 卷008 「用陳平之計予陳平金四萬斤」

-204년 · 한왕 · 패배

기신이 한왕으로 위장해 속이는 사이 한왕이 서문으로 빠져나가고, 형양은 함락된다.

정사 고조본기: 식량이 끊기자 여자 2천여 명을 동문으로 내보냈고, 기신이 한왕의 수레를 타고 속이는 틈에 한왕은 수십 기로 서문으로 빠져나갔다. 어사대부 주가·종공이 형양을 지키다가 뒤에 항우가 형양을 뽑고 두 사람을 죽였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8 「將軍紀信乃乘王駕詐為漢王誑楚」 / 史記 卷008 「拔滎陽誅周苛樅公而虜韓王信」

-204년 · 한왕

수무에서 장이·한신의 군영을 급습해 군권을 장악하고, 한신을 제 공략에 보낸다.

정사 고조본기: 한왕은 성고를 빠져나와 하수를 건너 수무에 묵었고, 사자를 자칭해 새벽에 장이·한신의 보루에 들어가 군을 빼앗았다. 장이에게 조 땅 병력을 더 거두게 하고 한신을 동쪽으로 보내 제를 치게 했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8 「自稱使者晨馳入張耳韓信壁而奪之軍」 / 史記 卷008 「使韓信東擊齊」

-203년 · 한왕

광무에서 항우와 마주 서서 열 가지 죄를 헤아리나 화살에 맞아 부상한다.

정사 고조본기: 한왕과 항우가 광무 사이에서 마주 서 이야기했고, 한왕이 항우의 죄 열 가지를 들자 항우가 복병의 쇠뇌로 쏘아 한왕의 가슴을 맞혔다. 한왕은 발을 만지며 「적이 내 발가락을 쏘았다」고 말해 군심을 안정시키고 성고로 달려 들어갔다.

관련: 형양·성고 공방

출전: 史記 卷008 「漢王數項羽曰」 / 史記 卷008 「虜中吾指」

-203년 · 한왕

항우와 홍구로 천하를 나누기로 약속하고, 부모·처자를 돌려받는다.

정사 고조본기: 항우는 한왕과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홍구 서쪽을 한, 동쪽을 초로 삼기로 약속했고, 한왕의 부모와 처자를 돌려보냈다.

출전: 史記 卷008 「割鴻溝而西者為漢鴻溝而東者為楚」 / 史記 卷008 「項王歸漢王父母妻子」

-202년 · 황제(고조) · 대승

고릉에서 한신·팽월이 오지 않아 크게 지지만, 장량의 계로 둘을 불러 해하에서 항우를 깬다.

정사 고조본기: 한왕이 양하 남쪽까지 항우를 추격했으나 한신·팽월이 고릉에 오지 않아 초군에게 크게 졌다. 장량의 계에 따라 땅을 약속하자 한신·팽월이 오고, 5년 해하에서 한신이 30만을 이끌고 맞서 항우군을 대파했다.

관련: 해하 전투

출전: 史記 卷008 「至固陵不會楚擊漢軍大破之」 / 史記 卷008 「淮陰侯復乘之大敗垓下」

-202년 · 황제(고조)

정월에 제후와 장상의 청으로 범수 북쪽에서 황제에 오른다.

정사 고조본기: 제후와 장상이 한왕을 황제로 받들자 한왕이 세 번 사양한 끝에 갑오일 범수 북쪽에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어 한신을 초왕, 팽월을 양왕 등으로 봉하고 낙양에 도읍했다가 유경·장량의 말로 관중에 들어가 도읍했다.

관련: 고릉 추격

출전: 史記 卷008 「乃即皇帝位汜水之陽」 / 史記 卷008 「高祖是日駕入都關中」

-201년 · 황제(고조)

운몽에 거짓 행차해 진에서 초왕 한신을 붙잡고 회음후로 낮춘다.

정사 고조본기: 6년 12월 한신이 모반한다는 고변이 있자 진평의 계로 운몽에 거짓 놀러 가 제후를 진에 모았고, 마중 나온 초왕 한신을 붙잡았다. 이어 한신을 회음후로 봉하고 그 땅을 둘로 나누어 형왕·초왕을 세웠다.

관련: 운몽 한신 체포

출전: 史記 卷008 「乃偽遊雲夢會諸侯於陳楚王信迎即因執之」 / 史記 卷008 「封韓信為淮陰侯」

-200년 · 황제(고조) · 패배

평성에서 흉노에 7일 포위되었다가 풀려난다.

정사 고조본기: 7년 흉노가 한왕 신의 마읍을 치자 신이 흉노와 모반했고, 고조가 직접 쳐서 평성에 이르렀다. 날씨가 추워 사졸의 열에 두셋이 손가락이 떨어졌고, 흉노가 평성에서 7일간 포위한 뒤 물러났다.

관련: 평성 백등산 포위

출전: 史記 卷008 「匈奴圍我平城七日而後罷去」 / 史記 卷008 「士卒墮指者什二三」

-199년 · 황제(고조)

동원에서 한왕 신의 잔당을 치고, 백인을 지나다 조상 관고의 암살 모의를 피한다.

정사 고조본기: 8년 고조가 동원에서 한왕 신의 남은 무리를 쳤고, 백인을 지날 때 조상 관고 등이 시해를 꾀했으나 마음이 불안해 머물지 않았다.

출전: 史記 卷008 「高祖東擊韓王信餘反寇於東垣」 / 史記 卷008 「趙相貫高等謀弒高祖」

-198년 · 황제(고조)

관고의 일이 드러나 삼족을 멸하고 조왕 오를 폐한다. 미앙궁이 이루어져 제후·군신을 모아 잔치한다.

정사 고조본기: 9년 조상 관고 등의 일이 발각되어 삼족이 멸해졌고 조왕 오는 선평후로 폐해졌다. 미앙궁이 이루어지자 고조가 제후·군신을 크게 불러 전전에서 술을 차리고 태상황에게 축수했다.

출전: 史記 卷008 「趙相貫高等事發覺夷三族」 / 史記 卷008 「未央宮成高祖大朝諸侯群臣」

-197년 · 황제(고조)

진희가 대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직접 한단까지 나아가 장수들을 금으로 매수한다.

정사 고조본기: 10년 8월 조 상국 진희가 대 땅에서 반란했다. 9월 고조가 직접 쳐 한단에 이르러, 진희의 장수들이 옛 장사꾼임을 듣고 금을 많이 풀어 유혹해 항복한 자가 많았다.

관련: 진희 반란

출전: 史記 卷008 「趙相國陳豨反代地」 / 史記 卷008 「乃多以金啗豨將豨將多降者」

-196년 · 황제(고조)

동원을 쳐 조리를 항복받고, 한신·팽월이 숙청된다.

정사 고조본기: 11년 진희의 장수 조리가 지키는 동원을 한 달 넘게 치다 항복을 받아 욕한 자를 베었다. 이해 봄 회음후 한신이 관중에서 모반해 삼족이 멸해졌고, 여름에 양왕 팽월도 모반으로 삼족이 멸해졌다.

관련: 팽월 주살

출전: 史記 卷008 「豨將趙利守東垣高祖攻之不下」 / 史記 卷008 「淮陰侯韓信謀反關中夷三族」 / 史記 卷008 「梁王彭越謀反廢遷蜀復欲反遂夷三族」

-196년 · 황제(고조)

영포가 반란해 형왕 유가의 땅을 합치고 회수를 건너자 직접 정벌에 나선다.

정사 고조본기: 11년 가을 7월 회남왕 영포가 반란하여 동으로 형왕 유가의 땅을 아울렀고, 북으로 회수를 건너 초왕 교가 설로 달아났다. 고조가 직접 치러 갔고 아들 장을 회남왕으로 세웠다.

관련: 영포 토벌

출전: 史記 卷008 「淮南王黥布反東并荊王劉賈地」 / 史記 卷008 「高祖自往擊之」

-195년 · 황제(고조) · 대승

회추에서 영포군을 깨고, 돌아오는 길에 패에서 대풍가를 부른다.

정사 고조본기: 12년 10월 고조가 회추에서 영포군을 깼고 영포는 달아나 별장이 쫓았다. 돌아오는 길에 패에 들러 고인·부로와 술을 마시며 「大風起兮雲飛揚」 노래를 부르고 패를 탕목읍으로 삼아 부세를 면제했다.

관련: 영포 토벌

출전: 史記 卷008 「高祖已擊布軍會甀布走」 / 史記 卷008 「大風起兮雲飛揚」

-195년 · 황제(고조)

영포 토벌 때 화살에 맞은 상처가 깊어져 장락궁에서 죽는다.

정사 고조본기: 영포를 칠 때 흐르는 화살에 맞아 병이 깊어졌고, 의사가 치료가 가능하다 했으나 고조는 「명은 하늘에 있다」며 치료를 물리쳤다. 이어 소하 다음은 조참, 그 다음은 왕릉·진평·주발이라고 일렀고, 4월 갑진일에 장락궁에서 죽었다.

출전: 史記 卷008 「高祖擊布時為流矢所中行道病」 / 史記 卷008 「四月甲辰高祖崩長樂宮」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8년 · 동아 전투

정사 항우본기·전담열전·자치통감: 진의 장함이 임제에서 제·위군을 깨고 제왕 전담을 죽인 뒤, 동아로 달아난 전영을 추격해 에워쌌다. 항량이 항보를 치다가 전영이 위급하다는 소식에 군사를 돌려 제의 전영·사마 용저의 군과 함께 동아 아래에서 장함군을 크게 깨뜨렸고 장함은 서쪽으로 달아났다. 전영은 곧 군을 이끌고 제로 돌아가 제왕 가를 쫓아냈고, 항량은 홀로 진군을 쫓아 성양을 도륙하고 복양 동쪽에서 다시 장함과 싸워 이겼다. 항량은 이후 연이은 승리로 교만해졌고 정도에서 크게 패해 죽는다. 병력 수는 원문에 없다.

-206년 · 함양 입성과 진 멸망

정사 진시황본기·고조본기: 조고가 이세를 죽이고 자영을 진왕으로 세웠으나 자영은 재궁에서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한 원년(월 표기상 10월) 유방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꾀하고 무관을 습격해 깬 뒤 남전 남쪽에서 의병(疑兵)의 깃발을 늘리고 약탈을 금해 진군을 흔들어 크게 깼다. 유방은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자영이 흰 말이 끄는 소거에 목에 끈을 걸고 옥새와 부절을 봉해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장수들이 자영을 죽이자 했으나 유방은 "항복한 사람을 죽이면 상서롭지 못하다"며 관리에게 맡기고 함양에 들어가 궁궐을 머물려다 번쾌·장량의 간언으로 보물과 창고를 봉하고 패상으로 돌아와 법삼장을 선포했다. 한 달 남짓 뒤 제후군이 이르러 항적이 자영과 진 종실을 죽이고 함양을 도륙하고 궁실을 불태웠다. 원문에 병력은 「數萬人」으로만 있어 수는 null로 둔다. 서기 환산은 자치통감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6년 · 함곡관 입관

정사 항우본기·고조본기: 항우는 장한을 항복받은 뒤 신안에서 진 항졸 20여만을 묻고 약속을 어긴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었다는 말에 함곡관에 이르렀으나 관에 병사가 지켜 들어가지 못했다. 고조본기는 유방이 「관을 막고 제후를 들이지 말라」는 말을 따라 관을 지키게 했다고 적고, 항우가 11월 중 크게 노해 당양군(경포) 등으로 관을 깼으며 12월 중 희에 이르렀다고 적는다. 병력은 월표가 40여만(제후군), 한서가 30여만이라 적어 다르다. 항우는 이어 희수 서쪽에 진을 쳤고 곧 홍문 연회로 이어진다. 연도는 한 원년(11월)에 따라 -206으로 두었다(대기열 표의 -207과 다름).

-205년 · 안읍 전투(위표 정벌)

정사 회음후열전: 한이 팽성에서 패하자 6월 위왕 표가 병친을 보러 간다며 귀국해 황하 나루를 끊고 한을 배반해 초와 화약했다. 한왕이 역이기를 보내 설득했으나 듣지 않았다. 8월 한왕이 한신을 좌승상으로 삼아 위를 치게 했다. 위왕은 포판에 병력을 모아 임진을 막았고, 한신은 임진에서 도하할 듯 배를 늘어놓아 의병을 쓰는 한편 복병을 하양에서 목앵부(나무통 뗏목)로 건네 안읍을 습격했다. 위왕 표가 놀라 군을 이끌고 맞섰으나 한신이 표를 사로잡고 위를 하동군으로 만들었다.

-203년 · 광무 대치

정사 항우본기: 한 4년 한왕은 한신의 군을 얻어 되돌아와 성고를 되찾고 광무에 진을 쳐 오창의 곡식으로 먹었다. 항우는 동해를 평정하고 돌아와 서쪽으로 광무에서 한과 마주 보고 군을 치고 몇 달을 서로 지켰다. 이때 팽월이 양 땅에서 초의 군량을 끊어 항우가 근심했고, 항우는 높은 도마를 세워 태공을 올려놓고 「지금 서둘러 항복하지 않으면 태공을 삶겠다」고 했다. 한왕이 「나의 아버지는 곧 너의 아버지이니 삶으려거든 국물 한 잔 나눠 달라」고 하자 항우가 노했으나 항백이 말려 중지했다. 항우는 한왕에게 일대일 결투를 청했으나 한왕은 「나는 힘이 아니라 지혜로 싸우겠다」며 거절했다. 한의 기사 누번이 초의 도전자를 세 번 쏴 죽이자 항우가 직접 갑옷을 입고 나서자 누번이 눈도 못 뜨고 도망쳤다. 광무 사이에서 한왕이 항우의 죄 열 가지를 헤아리자 항우가 숨겨 둔 쇠뇌로 쏘아 한왕이 가슴을 다쳐 성고로 달아났다.

-203년 · 홍구 화약

정사 항우본기: 한 4년 한군은 병력이 많고 식량이 넉넉했으나 항우군은 지치고 식량이 끊겼다. 한이 육가를 보내 태공을 돌려 달라 청했으나 항우가 듣지 않았고, 다시 후공을 보내자 항우가 한과 약정을 맺어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홍구 서쪽을 한, 동쪽을 초로 삼았다. 항우는 한왕의 부모·처자를 돌려보내자 군중이 만세를 불렀다. 한왕은 후공을 평국군에 봉했다. 항우는 약조 후 군을 풀어 동쪽으로 돌아갔다. 한왕이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량·진평이 「호랑이를 길러 환을 남기는 일」이라며 추격을 권했고 한왕이 따랐다.

-203년 · 사수 전투

정사 항우본기: 한 4년 항우가 대사마 조구에게 성고를 지키되 한이 싸움을 걸어도 응하지 말고 동쪽으로 가지 못하게만 하라고 이르고, 자신은 15일 안에 양 땅의 팽월을 평정하겠다며 진류·외황·수양을 공략했다. 한군이 여러 번 싸움을 걸었으나 초군이 나오지 않자 5~6일 욕을 시키니 조구가 노해 사수를 건넜다. 사졸이 반쯤 건넜을 때 한이 쳐서 초군을 크게 깨고 초의 재화를 모두 얻었다. 대사마 구, 장사 예(흔), 새왕 흔이 사수 위에서 스스로 목을 베었다. 수양에 있던 항우는 해춘후 군이 패했다는 말을 듣고 군을 돌려 돌아왔고, 한군은 형양 동쪽에서 종리말을 포위하고 있다가 항우가 이르자 험한 곳으로 물러났다.

-202년 · 연왕 장도 토벌

정사 고조본기·노관전: 한 5년(-202) 항우를 깬 뒤 연왕 장도가 반란을 일으켜 대 땅을 함락시켰다. 고조가 친히 나가 연왕 장도를 사로잡고 태위 노관을 연왕으로 세웠으며, 번쾌는 대를 공격했다. 노관전은 노관이 7월 임강왕 공위 토벌에서 돌아와 장도 토벌에 종군했고 장도가 항복했다고 적으며 8월 노관을 연왕으로 세웠다고 한다. 고조본기는 장도 반란을 10월에 적어 달이 갈린다.

-202년 · 오강 자결

정사 항우본기: 해하에서 한군과 제후군에 겹겹이 둘러싸인 항우는 밤에 사방의 초나라 노래를 듣고 놀라 우미인과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기병 800여 명과 밤에 포위를 뚫고 남으로 달아났고, 새벽에야 안 한군은 기장 관영에게 기병 5천을 주어 추격시켰다. 회수를 건널 때 따르는 기병은 100여 명, 음릉에서 길을 잃고 늪에 빠져 따라잡혔고, 동성에 이르렀을 때는 28기였다. 항우는 세 곳으로 나눈 돌격으로 한 장수와 도위를 베었으나, 오강에서 정장이 배를 대고 강동 재기를 권하자 거절하고 말을 주고 걸어서 싸우다 몸에 십여 군데 상처를 입고 여마동에게 "내가 너에게 덕을 베풀겠다"며 스스로 목을 찔렀다. 왕예·양희·여마동·여승·양무가 몸을 나눠 가졌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96진 말 패현에서 군을 일으켜 관중에 먼저 들어가고 해하에서 항우를 멸한 뒤 황제에 오른다(고조본기). 다만 직접 지휘한 싸움은 팽성 등에서 크게 졌다.
무력67직접 칼을 들어 이긴 기록은 드물고 팽성·평성에서 패했다. 활에 맞아 가슴을 다치는 장면 정도(고조본기).
지력92장량·소하·한신을 쓴 것을 스스로 꼽고(「此三者皆人傑也吾能用之」), 진평의 이간책과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인다(고조본기).
정치87관중에서 법 3장을 약속하고 낙양 대신 관중에 도읍해 제후왕을 봉하고 숙청하며 체제를 세운다(고조본기).
매력96패현 부로가 앞서 추대했고 번쾌·소하·조참이 따랐으며, 항우와의 전쟁에서도 제후를 모으는 힘이 있었다(고조본기).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유방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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