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기(酈食其)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268년사망 -203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268년 — 「年六十餘」(유방을 만난 -207년)에서 환산한 추정

사망 -203년 — 한 4년(-203) 겨울 — 한신의 제 기습 직후 전광에게 삶겨 죽음. 월표·열전의 달이 달라 연대는 전담열전 「橫定齊三年」(전영 사망 -205년 기준)과 함께 추정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7년요하객·변사 — 유방 휘하, 광야군(廣野君)기록
-204년형양변사 — 한왕의 사자기록
-203년임치변사 — 한왕의 사자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8년기타고양의 이문 감문리 — 진승·항량 거병 때 장수들이 예법이 번거롭고 대범한 말을 듣지 못한다 여겨 몸을 숨김불명
-207년한객·변사 — 유방 휘하, 광야군(廣野君)기록
-206~-205년한변사 — 한왕의 사자불명
-204~-203년한변사 — 한왕의 사자기록

나온 사건·전투

-207년 · 객·변사 — 유방 휘하, 광야군(廣野君)

고양을 지나던 유방을 만나 걸터앉아 발을 씻던 그를 꾸짖어 예를 갖추게 하고 진류 습격책을 올린다.

정사 역생육가열전·고조본기: 고양 감문리 역식기가 유방이 대인장자임을 알아보고 만남을 청했다. 유방이 걸터앉아 두 여자에게 발을 씻기게 하자 역생은 절하지 않고 길게 읍하며 「무도한 진을 치려면 어른을 걸터앉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고, 유방이 발씻기를 그치고 옷깃을 여미며 사과해 윗자리에 앉혔다. 이어 진류가 천하의 요충이고 곡식이 쌓여 있다며 습격을 권해 유방이 광야군 칭호를 주었다. 진초지제월표는 이 일을 2월 항에 둔다.

출전: 史記 卷097 「沛公輟洗起攝衣延酈生上坐謝之」 / 史記 卷008 「諸將過此者多吾視沛公大人長者」 / 史記 卷008 「乃以酈食其為廣野君」

-207년 · 객·변사 — 유방 휘하, 광야군(廣野君)

진류에 들어가 유방이 군량과 병기를 얻어 진류를 항복시키는 길을 연다.

정사 역생육가열전: 역생이 진류 현령을 설득했으나 듣지 않자 사정에 따라 유방이 군을 이끌고 뒤를 따라 진류를 함락했고, 그 공으로 역식기가 광야군이 되었다. 같은 책의 보충 기사는 역생이 밤중에 현령의 머리를 베어 성을 넘어 유방에게 알렸다고도 적는다. 월표는 2월 항에 「팽월의 군을 창읍에서 얻고 진류를 습격해 역식기의 계책으로 군이 쌓인 곡식을 얻었다」고 적는다.

출전: 史記 卷097 「遂下陳留」 / 史記 卷097 「號酈食其為廣野君」 / 史記 卷008 「食其說沛公襲陳留得秦積粟」 / 史記 卷016 「用酈食其策軍得積粟」

-207년 · 객·변사 — 유방 휘하, 광야군(廣野君)

장량의 계책에 따라 무관 앞 요하에서 중보를 들고 진 장수를 이익으로 꾀어 항복 약속을 끌어낸다.

정사 유후세가·고조본기: 장량이 요하의 진군이 아직 강하니 5만 명 분 식량을 갖추고 산 위에 깃발을 세워 의병으로 삼은 뒤 역식기에게 중한 보배를 가져가 진 장수를 꾀게 하자고 했다. 진 장수가 연합해 함께 함양을 치자고 했으나 장량이 병졸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해이한 틈을 쳐 크게 이겼다. 월표는 8월 항에 무관을 깼다고 적는다.

출전: 史記 卷055 「令酈食其持重寶啗秦將」 / 史記 卷055 「沛公乃引兵擊秦軍大破之」 / 史記 卷016 「攻武關破之」

-204년 · 변사 — 한왕의 사자

형양이 항우에게 급히 포위되자 한왕에게 육국의 후손을 세우자고 건의했으나 장량의 반대로 인장을 새기던 일이 그친다.

정사 유후세가: 한 3년 항우가 형양을 급히 포위하자 한왕이 역식기와 초의 힘을 꺾을 방법을 의논했다. 역식기는 탕이 걸을 친 뒤 하의 후손을 기에, 무왕이 주를 친 뒤 은의 후손을 송에 봉한 예를 들며 육국의 후손을 세우자고 했고, 한왕이 인장을 새기게 했다. 역식기가 떠나기 전에 장량이 와서 여덟 가지 불가를 들어 반대했고 한왕은 인장을 녹여 버렸다.

출전: 史記 卷055 「漢三年項羽急圍漢王滎陽漢王恐憂與酈食其謀橈楚權」 / 史記 卷055 「陛下誠能復立六國後世」 / 史記 卷055 「食其未行張良從外來謁」

-204년 · 변사 — 한왕의 사자

한군이 성고 동쪽을 포기하려 하자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고 성고의 요충을 막으라는 계책을 올린다.

정사 역생육가열전: 한 3년 가을 항우가 형양을 함락해 한군이 공·낙으로 물러나자 한왕이 성고 동쪽을 버리려 했다. 역생이 「오창은 천하의 곡식이 오래 옮겨진 곳인데 초가 굳게 지키지 않았다」며 형양을 되찾고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며 성고의 험함을 막을 것을 권했고, 한왕이 「좋다」 하고 그 계책대로 다시 오창을 지켰다. 장소는 본문에 따로 없다.

출전: 史記 卷097 「漢三年秋項羽擊漢拔滎陽」 / 史記 卷097 「夫敖倉天下轉輸久矣」 / 史記 卷097 「乃從其畫復守敖倉」

-203년 · 변사 — 한왕의 사자

한왕의 사자로 제왕 전광을 설득해 역하의 방비를 풀게 하지만 한신의 기습으로 삶겨 죽는다.

정사 역생육가열전·전담열전: 역생이 제왕 전광에게 「천하는 한으로 돌아간다」며 항복을 권해 전광이 역하의 병력을 거두고 역생과 날마다 술을 마셨다. 그러나 한신이 사자 역생이 제 70여 성을 말로 얻은 것을 알고도 밤에 평원을 건너 습격했다. 제왕 전광은 역생이 자신을 팔았다고 여겨 「한군을 멈추면 살려 주마, 아니면 삶겠다」라 했고, 역생은 「큰일을 하는 자는 사소한 것을 삼가지 않는다」라며 응하지 않아 삶겨 죽었다. 전담열전은 전횡이 이 일 뒤 전광을 이어 제를 지켰다고 적는다. 한 4년(-203) 겨울로 추정.

관련: 역하 전투

출전: 史記 卷097 「田廣以為然乃聽酈生罷歷下兵守戰備」 / 史記 卷097 「汝能止漢軍我活汝不然我將亨汝」 / 史記 卷097 「舉大事不細謹盛德不辭讓」 / 史記 卷097 「齊王遂亨酈生引兵東走」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7년 · 무관 입관

정사 고조본기·통감: 패공은 장량의 계책으로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달래는 한편 무관을 기습해 깨고, 요관 앞 산 위에 깃발을 늘어놓는 의병을 세운 뒤 남전 남쪽과 북쪽에서 진군을 크게 깨뜨렸다. 한 원년 10월 패공의 군이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진왕 자영이 목에 끈을 걸고 흰 수레, 흰 말로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통감은 8월 패공이 수만 명을 이끌고 무관을 쳐 도륙했다고 적는다. 진 쪽 병력 수는 원문에 없다.

-206년 · 함양 입성과 진 멸망

정사 진시황본기·고조본기: 조고가 이세를 죽이고 자영을 진왕으로 세웠으나 자영은 재궁에서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한 원년(월 표기상 10월) 유방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역이기·육가를 보내 진 장수를 이익으로 꾀하고 무관을 습격해 깬 뒤 남전 남쪽에서 의병(疑兵)의 깃발을 늘리고 약탈을 금해 진군을 흔들어 크게 깼다. 유방은 제후보다 먼저 패상에 이르렀고 자영이 흰 말이 끄는 소거에 목에 끈을 걸고 옥새와 부절을 봉해 지도 곁에서 항복했다. 장수들이 자영을 죽이자 했으나 유방은 "항복한 사람을 죽이면 상서롭지 못하다"며 관리에게 맡기고 함양에 들어가 궁궐을 머물려다 번쾌·장량의 간언으로 보물과 창고를 봉하고 패상으로 돌아와 법삼장을 선포했다. 한 달 남짓 뒤 제후군이 이르러 항적이 자영과 진 종실을 죽이고 함양을 도륙하고 궁실을 불태웠다. 원문에 병력은 「數萬人」으로만 있어 수는 null로 둔다. 서기 환산은 자치통감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5년 · 안읍 전투(위표 정벌)

정사 회음후열전: 한이 팽성에서 패하자 6월 위왕 표가 병친을 보러 간다며 귀국해 황하 나루를 끊고 한을 배반해 초와 화약했다. 한왕이 역이기를 보내 설득했으나 듣지 않았다. 8월 한왕이 한신을 좌승상으로 삼아 위를 치게 했다. 위왕은 포판에 병력을 모아 임진을 막았고, 한신은 임진에서 도하할 듯 배를 늘어놓아 의병을 쓰는 한편 복병을 하양에서 목앵부(나무통 뗏목)로 건네 안읍을 습격했다. 위왕 표가 놀라 군을 이끌고 맞섰으나 한신이 표를 사로잡고 위를 하동군으로 만들었다.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군사 지휘 기록은 없고 사자와 책사로만 나온다(역생육가열전).
무력50군사 기록이 없어 낮게 둔 추정값이다. 다만 사자 앞에서 칼을 짚고 호통쳤다는 대목이 있다(역생육가열전).
지력88진류 습격책, 오창 확보책, 제 70여 성을 설득해 항복시킨 일(역생육가열전).
정치67한군의 후방 병참과 외교 기능을 맡았으나 육국 후손 책은 장량에게 막혔다(유후세가).
매력79스스로 「고양 술꾼」이라 칭하며 유방의 예를 바꿔 놓았고, 죽은 뒤 전횡이 그의 아우 역상에게 두려움을 표했다(전담열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역이기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