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27년 — 정사에 몰년이 적혀 있지 않다(기춘 습격 4년 뒤 졸). 227은 통설 값을 둔 자리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15년 | 합비 | 분무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6~202년 | 오 | 영녕장·남부도위 겸 | 불명 |
| 203~207년 | 오 | 평동교위 | 불명 |
| 208~214년 | 오 | 위무중랑장·신도태수 | 불명 |
| 215년 | 오 | 분무장군 | 기록 |
| 216~221년 | 오 | 안동장군·산음후 | 불명 |
| 222~224년 | 오 | 안동장군 | 불명 |
| 225~227년 | 오 | 후장군·서주목(가절) | 불명 |
손책이 회계에 오자 효렴으로 천거받고 영녕장이 되어 후관을 평정한다.
정사 하제전: 건안 원년 손책이 회계에 와서 하제를 효렴으로 천거했다. 왕랑이 동야로 달아나 후관장 상승이 군사를 일으키자 영녕장이 되었고, 한안이 패하자 도위 일을 대신해 상승의 항복을 받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孫策臨郡,察齊孝廉」
건안·한흥·남평의 반란을 건안에서 평정하고 홍명 등 다섯 우두머리를 연파한다.
정사 하제전: 건안 8년 군에서 속현 병사 5천을 발해 하제의 지휘를 받게 했고 홍명·홍진·원어·오면·화당 등이 이끈 만 호 규모의 둔을 연파, 홍명을 진 앞에서 베고 나머지가 항복했다. 6천 급을 베어 명수를 모두 잡고 평동교위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臨陳斬明」
단양 흡·사 산적을 칠 때 임력산 절벽에 철제 갈고리로 길을 내어 밤에 올라 북을 쳐 적을 무너뜨린다.
정사 하제전: 건안 13년 위무중랑장으로 흡·사를 쳤다. 임력산은 사방이 절벽이어서 직접 둘러 살핀 뒤 경첩한 병사를 모아 철제 갈고리를 만들어 은밀한 곳에서 절벽에 길을 내 밤에 몰래 올라가 북과 뿔피리를 울렸고 적이 크게 놀라 흩어졌다. 7천을 베었다. 신도군이 설치되자 태수가 되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陰募輕捷士,為作鐵弋」
손권의 합비 정벌에 따라가 서성이 잃은 창을 되찾는다.
정사 하제전: 건안 20년 합비 정벌에 따라갔다. 성에서 출전하자 서성이 부상하고 창을 잃었는데 하제가 병사를 이끌어 막고 서성이 잃은 창을 되찾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得盛所失」
조조의 인수를 받은 파양의 우돌이 일으킨 반란을 육손과 함께 깨뜨린다.
정사 하제전: 건안 21년 파양 백성 우돌이 조공의 인수를 받아 민을 도적으로 만들자 하제가 육손과 우돌을 깨뜨려 수천을 베었고, 단양 세 현이 항복해 정병 8천을 얻었다. 안동장군·산음후, 강 위에 주둔해 부주 이상에서 환까지 감독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齊與陸遜討破突」
조휴가 쳐 올 때 늦게 도착해 신시에 주둔했고, 풍랑으로 동구 군이 절반을 잃자 홀로 온전한 군이 되어 의지가 된다.
정사 하제전: 황무 초 위가 조휴를 보내 쳐 오자 하제는 길이 멀어 늦게 도착해 신시에 주둔해 막았다. 동구의 여러 군이 풍랑으로 절반을 잃어 장병이 낯빛을 잃었으나 하제의 군은 건너지 않아 온전했고 장수들이 의지했다. 조휴가 군을 물렸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因住新市為拒」
위로 간 진종이 기춘태수가 되어 안락을 습격하려 하자 하제가 미방·선우단 등을 이끌어 기춘을 습격해 진종을 사로잡는다.
정사 하제전: 진종이 위로 투항해 기춘태수가 되어 안락을 습격하려 하자 손권이 군이 막 끝난 6월 한여름에 하제에게 미방·선우단 등을 이끌고 기춘을 습격하게 해 진종을 사로잡았다. 4년 뒤 졸.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0 「詔齊督麋芳、鮮于丹等襲蘄春」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8 | 건안 8년 건안의 도적 홍명 등 5인을 연파하고 6천을 베어 명수(名帥)를 모두 잡았다(하제전). |
| 무력 | 80 | 임력산에서 직접 산세를 살피고 철제 갈고리로 절벽을 올라 밤에 북을 쳐 적을 혼란시켰다(하제전). |
| 지력 | 75 | 군수에서 손책이 효렴으로 천거했고 이후 산월 토벌을 맡았다(하제전). |
| 정치 | 61 | 황무 초 조휴가 올 때 늦게 도착해 신시에 주둔, 풍랑으로 낙오된 동구 군을 대신한 군세가 되었다(하제전). |
| 매력 | 60 | 무기와 배를 화려하고 정교하게 갖추어 조휴 등이 두려워 물러났다(하제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하제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