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219년 — 태평 원년(256) 죽을 때 38세로 역산
사망 256년 — 태평 원년 석두성에서 꿈에 제갈각에게 공격당한 뒤 놀라 병이 나 죽음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52년 | 건업 | 무위장군·시중 | 기록 |
| 253년 | 건업 | 승상·대장군 | 기록 |
| 254년 | 건업 | 승상·대장군 | 기록 |
| 256년 | 건업 | 승상·대장군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19~251년 | 기타·재야 | (손견의 아우 손정의 증손, 활과 말에 익숙) | 불명 |
| 252년 | 오 | 무위장군·시중 | 기록 |
| 253~254년 | 오 | 승상·대장군 | 기록 |
| 255년 | 오 | 승상·대장군 | 불명 |
| 256년 | 오 | 승상·대장군 | 기록 |
손권 임종 때 유조를 받아 보정하고 무위장군으로 숙위를 맡는다.
정사 손준전: 손권 말년 무위도위가 되고 시중이 되었다. 손권이 죽을 때 유조를 받아 보정했고 무위장군으로 숙위를 맡아 도향후에 봉해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權臨薨,受遺輔政」
제갈각을 죽이고 승상대장군·독중외제군사가 된다.
정사 손준전: 제갈각을 죽인 뒤 승상·대장군, 독중외제군사·가절로 올랐고 부춘후에 봉해졌다. 등윤이 제갈각 아들의 장인이라 해서 사퇴하려 하자 "곤·우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며 만류했다.
연의: 연의 108회 — 연의 108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64 「既誅諸葛恪,遷丞相大將軍」
오후 손영이 손준을 죽이려는 모의가 새자 손영을 죽인다.
정사 손준전: 오봉 원년 오후 손영이 손준 살해를 꾀했으나 일이 새서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吳侯英謀殺峻」
오봉 2년 위 관구검·문흠이 반란하자 여거·유찬 등을 이끌어 수춘을 습격하려 했으나 문흠이 패해 항복하자 철군한다.
정사 손준전: 오봉 2년 위 관구검·문흠이 무리를 이끌고 반란해 낙가에서 위군과 싸웠고, 손준은 표기장군 여거·좌장군 유찬을 이끌고 수춘을 습격하려 했으나 문흠이 패해 항복하자 군을 돌렸다. 이해 촉 사신이 와서 손의 등이 손준을 죽이려다 일이 새 자살하고 수십 명이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峻帥驃騎將軍呂據、左將軍留贊襲壽春」
태평 원년 문흠·여거 등의 위 정벌을 석두성에서 전송하다 여거의 군진에 들어가 군의 정제됨에 불안해 심통을 핑계로 돌아와, 제갈각에게 공격당하는 꿈을 꾸고 병이 나 죽는다.
정사 손준전: 문흠이 위 정벌을 권하자 손준은 여거·유찬·주이·당자와 함께 강도에서 회수·사수로 들어가 청·서를 노리게 했다. 손준이 등윤과 석두성에서 이들을 전송하며 100명 남짓 이끌고 여거의 군영에 들어갔는데 군이 정돈된 것을 꺼려 심통을 핑계로 돌아왔고, 꿈에 제갈각에게 맞아 놀라 발병해 38세로 죽으며 손침에게 뒷일을 맡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64 「遂夢為諸葛恪所擊,恐懼發病死」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제갈각을 연회로 불러 조서를 사칭해 죽이고 승상대장군이 되었다(손준전). |
| 무력 | 60 | 젊어서 활과 말에 능하고 정과(精果)·담결(膽決)했다(손준전). |
| 지력 | 45 | 손준전에 계책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광릉에 성을 쌓으려는 계획을 간하는 이를 물리치고 끝내 이루지 못했다). |
| 정치 | 24 | 교만하고 험악해 많은 사람을 형살해 백성이 소란했다(손준전). |
| 매력 | 50 | 궁인과 간통하고 공주 노반과 사통했다(손준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손준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