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53년 — 통설 값(정사 본문에 나이 없음)
사망 208년 — 정사에는 「구별 믿고 불경해 처형됨」으로만 적혀 있다. 208은 통설 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8년 | 허창 | 소부(허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3년 | 기타·재야 | (노국 출신, 북해상) | 불명 |
| 194~197년 | 기타·재야 | 북해상 | 불명 |
| 198년 | 기타·재야 | 소부(허도) | 기록 |
| 199~207년 | 기타·재야 | 소부(허도) | 불명 |
| 208년 | 기타·재야 | 태중대부 | 불명 |
황건이 쳐들어오자 도창에 나가 주둔하다 관해에게 포위당해 태사자의 도움으로 유비의 구원군을 받는다.
정사 태사자전: 북해상 공융이 황건 약탈로 도창에 나가 주둔하다 도적 관해에게 포위되었다. 태사자가 요동에서 돌아와 포위를 뚫고 평원상 유비에게 가 구원을 청해 정병 3천이 따랐고 도적이 흩어졌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11회 — 연의 11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49 「為賊管亥所圍」
조조와 원소가 대치할 때 원소 쪽이 병력·모사·장수가 강해 이기기 어렵다고 순욱에게 말한다.
정사 순욱전: 건안 3년 조조가 여포를 평정하고 서주를 정한 뒤 원소와 대치하자 공융이 순욱에게 「원소는 땅이 넓고 병이 강하며 전풍·허유 같은 모사와 심배·봉기, 안량·문추가 있어 이기기 어렵다」고 했고 순욱은 원소의 약점을 들어 답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0 「孔融謂彧曰」
조조가 위세를 믿고 불경했다 하여 공융·허유·누규를 죽였다고 최염전에 적힌다.
정사 최염전: 태조는 성품이 시기해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고 노국 공융·남양 허유·누규가 모두 오랜 구별을 믿고 불경하다 하여 처형당했다. 연도는 통설(208)로 둠.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12 「皆以恃舊不虔見誅」
정사 무제기: 193년 가을 조조가 도겸을 쳐 십여 성을 함락했으나 도겸이 성을 지키며 나오지 않았다. 194년 다시 쳐 다섯 성을 함락하고 동해까지 진출했다가 담 동쪽에서 도겸의 조표·유비에게 막혔으나 이를 깨고 양분을 쳤다. 연의 10~11회는 조조의 부친 조숭 피살을 출병 사유로, 공융·전해의 구원을 더한다.
연의: 연의 10~11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은 없다. |
| 지력 | 85 | 원소의 병력·모사·장수를 헤아려 「극복하기 어렵다」고 순욱에게 말했다(순욱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매력 | 80 | 황건이 포위한 도도성에서 태사자의 구원을 받아 이후 그를 「나의 젊은 벗」이라 불렀다(태사자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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