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녕(甘寧)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오출생 생년 불명사망 220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20년 — 정사에 몰년이 적혀 있지 않다(건안 20년 이후 병사). 220은 자리값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이릉(남군 협공, 이릉 점거)기록
215년합비절충장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8년오(오로 귀순, 황조 격파 건의)불명
209년오(남군 협공, 이릉 점거)기록
210~214년오(남군 협공, 이릉 점거)불명
215년오절충장군기록
216~220년오절충장군불명

나온 사건·전투

208년 · (오로 귀순, 황조 격파 건의)

오로 귀순해 손권에게 먼저 황조를 치고 서쪽으로 나아가라고 건의한다.

정사 감녕전: 유표·황조에게 쓰이지 못하다 오로 왔고, 먼저 황조를 치고 서쪽으로 초관을 차지해 점차 파촉까지 노릴 것을 진언했다. 장소가 반대했으나 손권이 따랐다. 황조 토벌은 208.

연의: 연의 39회 — 연의 39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55 「宜先取黃祖」

209년 · (남군 협공, 이릉 점거)

남군 공격 때 이릉을 먼저 점거해 조인의 5~6천에게 포위되어도 버틴다.

정사 감녕전: 남군 공격 중 이릉을 바로 취해 지켰고 병력이 천 명 정도인데 조인이 5~6천으로 포위해 여러 날 쏘아도 담소하며 자약했다. 주유가 여몽의 계책으로 포위를 풀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5 「寧受攻累日」

215년 · 절충장군

합비에서 장료가 습격하자 활을 쏘며 능통 등과 결사 항전한다.

정사 감녕전: 건안 20년 합비 정벌 때 손권이 소요진 북쪽에 있을 때 장료가 기습하자 감녕이 활을 쏘며 능통 등과 사력을 다해 싸웠다.

연의: 연의 67회 — 연의 67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관련: 합비 소요진 전투

출전: 三國志 卷55 「寧引弓射敵,與統等死戰」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208년 · 하구 전투(황조 토벌)

정사 오주전: 208년 봄 손권이 황조를 다시 쳤다. 황조가 먼저 주병(舟兵)으로 맞섰으나 도위 여몽이 선봉을 깼고 능통·동습 등이 전력을 다해 공격해 성을 도륙했다. 황조는 몸만 빠져나가다 기병 풍칙에게 목이 베였고 남녀 수만 구를 포로로 했다. 동습전은 황조가 면구에서 몽충 두 척으로 양쪽을 막고 돌로 닻을 매어 천 명이 쇠뇌를 쏘았으나, 동습·능통이 결사 백 명으로 큰 배를 타고 몽충 속으로 뚫고 들어가 닻줄을 끊어 길을 열었다고 적는다. 연의 38회는 이 싸움을 건안 8년(203)으로 앞당겨 능조가 감녕의 화살에 죽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38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6건안 20년 합비 전투에서 퇴각 때 활을 쏘며 장료와 맞서 싸웠다(감녕전).
무력90이릉에서 천 명 미만 병력으로 조인의 5~6천에 에워싸여도 담소하며 버텼다(감녕전).
지력75손권에게 먼저 황조를 치고 서쪽으로 파촉을 노리라고 대책을 올렸다(감녕전).
정치57정치 능력의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
매력71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사졸을 후하게 대해 병사들이 목숨을 바쳤다(감녕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감녕의 이동 경로

오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