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190년 — 정사에 이후 행적과 몰년이 없다. 마지막 기록 연도(190)를 채운 자리값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0년 | 형양 | 중랑장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년 | 동탁 | 중랑장 | 기록 |
동탁의 중랑장으로 형양 변수에서 조조와 맞서 사상자를 크게 내고 조조도 화살에 맞게 하나 산조는 쉽게 못 친다고 보아 군을 돌린다.
정사 무제기: 조조가 서쪽으로 성고를 차지하려 형양 변수에 이르러 동탁의 장수 서영을 만나 싸웠으나 불리해 사졸 사상자가 많았고 조조는 흐르는 화살에 맞고 탄 말도 다쳐 조홍이 말을 주어 밤에 달아났다. 서영은 조조 군이 적은 것을 보고 힘껏 싸운 하루 끝에 산조를 쉽게 못 친다 여겨 군을 돌렸다.
연의: 연의 6회 — 연의 6회에 같은 인물·사건이 나온다.
출전: 三國志 卷01 「遇卓將徐榮,與戰不利」
같은 고을 공손도를 요동태수로 추천한다.
정사 공손도전: 같은 군의 서영이 동탁의 중랑장이 되어 공손도를 요동태수로 천거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8 「同郡徐榮為董卓中郎將,薦度為遼東太守」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62 | 형양 변수에서 조조를 흐르는 화살에 맞게 하고 말까지 다치게 해 큰 피해를 입혔다(무제기). |
| 지력 | 54 | 조조의 군이 적은 것을 보고 힘껏 하루를 싸웠고 산조는 쉽게 칠 수 없다 보아 군을 돌렸다(무제기).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매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서영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