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董卓)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동탁출생 생년 불명사망 192년기록 연도 5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2년 — 초평 3년(192) 4월 장안, 여포 등에게 피살(동탁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88년진창전장군(진창 방어)기록
189년낙양병주목 → 태위 → 상국기록
190년낙양상국·낙양 주둔 → 천도기록
191년장안 · 다른 후보: 미태사·상보기록
192년장안 · 다른 후보: 미태사·상보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년후한 조정중랑장(황건 토벌 중 패전)불명
185~187년후한 조정중랑장·전장군(양주 방어, 연대 불명)불명
188년후한 조정전장군(진창 방어)기록
189년동탁병주목 → 태위 → 상국기록
190년동탁상국·낙양 주둔 → 천도기록
191~192년동탁태사·상보기록

나온 사건·전투

184년 · 중랑장(황건 토벌 중 패전) · 강등

황건 토벌에 나섰다가 군이 패해 죄를 받는다.

정사 동탁전: 중랑장으로 황건을 토벌했으나 군이 패해 죄를 받았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후한서·황보숭전의 중평 연간 서술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6 「討黃巾,軍敗抵罪」

188년 · 전장군(진창 방어)

진창에서 황보숭과 함께 왕국의 포위를 풀려 하나 서로 계책이 갈린다.

정사 후한서 황보숭전: 중평 5년 왕국이 진창을 포위하자 황보숭이 좌장군, 동탁이 전장군으로 각 2만을 거느렸다. 동탁은 속히 구하자 했으나 황보숭은 듣지 않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後漢書 卷71 「卓欲速進赴陳倉,嵩不聽」

189년 · 병주목 → 태위 → 상국

하진의 부름을 받아 입경, 소평진에서 달아난 황제를 맞이하고 하진·정원의 병력을 거두어 낙양 병권을 쥔다.

정사 동탁전: 하진이 불러 낙양으로 향하는 사이 하진이 죽고, 단규 등이 황제를 끼고 소평진으로 달아나자 북망에서 황제를 맞아 환궁했다. 여포에게 정원을 죽이게 해 그 병력을 합쳤다.

연의: 연의 3회 — 연의 3회는 정원 살해를 이숙의 설득과 적토마 선물로 극화한다.

관련: 여포,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부

출전: 三國志 卷06 「卓遂將其衆迎帝于北芒,還宮」 / 三國志 卷06 「卓又使呂布殺執金吾丁原,并其衆」

189년 · 병주목 → 태위 → 상국 · 승진

소제를 폐해 홍농왕으로 내리고 진류왕(헌제)을 세우고 상국에 오른다.

정사 동탁전: 태위에 올라 황제를 폐해 홍농왕으로 하고 곧 홍농왕과 하태후를 죽였다. 영제의 어린 아들 진류왕을 세우니 헌제다. 상국이 되고 미후에 봉해졌다.

연의: 연의 3~4회 — 연의 3~4회는 온명원 회의와 정원·원소의 반응을 극화한다.

관련: 여포,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부

출전: 三國志 卷06 「遂廢帝爲弘農王」 / 三國志 卷06 「立靈帝少子陳留王,是爲獻帝」

190년 · 상국·낙양 주둔 → 천도

관동 연합군이 일어나자 낙양을 불태우고 천자를 장안으로 옮긴다.

정사 동탁전: 초평 원년 2월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고 낙양 궁실을 태웠으며 능묘를 파헤쳐 보물을 취했다. 이어 태사가 됐다.

연의: 연의 6회 — 연의 6회는 이유의 건의와 낙양 방화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乃徙天子都長安」 / 三國志 卷06 「焚燒洛陽宮室」

191년 · 태사·상보

장안에서 태사가 되고 미(郿)에 보루를 쌓아 30년 곡식을 쌓는다.

정사 동탁전: 미오(郿塢)를 장안성만큼 높게 쌓고 30년 치 곡식을 쌓았다. 일이 이루어지면 천하를 차지하고, 아니면 여기서 늙겠다고 했다.

연의: 연의 8회 — 연의 8회는 같은 보루를 다루며 여포와 초선의 관계를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6 「築郿塢,高與長安城埒」 / 三國志 卷06 「積穀爲三十年儲」

192년 · 태사·상보 · 대패

왕윤·사손서·여포의 모의로 미앙전에서 여포에게 죽고 삼족이 멸해진다.

정사 동탁전: 초평 3년 4월 왕윤, 사손서, 여포가 공모했다. 여포가 조서가 있다며 동탁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연의: 연의 9회 — 연의 9회가 초선과 연환계로 극화한 장면이며 줄거리 골격은 같다.

관련: 여포, 동탁을 죽이다

출전: 三國志 卷06 「遂殺卓,夷三族」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190년 · 호뢰관 전투

정사 정사에는 호뢰관에서 연합군과 동탁군이 싸운 기록이 없다. 무제기는 원소 등이 산동에서 일어났으나 동탁의 병세가 강해 먼저 진군하는 자가 없었다고 적는다. 화웅을 벤 것은 연의에서 관우(온주참화웅)로 그려지나 정사에서는 손견이 양인에서 화웅을 벤다. 삼영전여포도 정사에 없다.

연의: 연의 5~6회

191년 · 양인 전투

정사 손견전: 손견이 노양에 돌아와 군을 정비하고 양인에서 동탁군과 다시 싸워 크게 이겨 도독 화웅 등을 베었다(梟其都督華雄). 후한서 동탁전: 동탁은 호진·여포를 보냈으나 둘이 사이가 나빠 군중이 놀라 흩어졌고 손견이 추격해 이겼다. 연의는 화웅을 사수관에서 관우가 베는 것으로 옮긴다.

연의: 연의 5~6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82망원협에서 강족·호족 수만 명에게 포위됐을 때 물길을 막아 속이고 빠져나와 6군 중 혼자 군을 온전히 보존했다(동탁전).
무력89힘이 남보다 뛰어났고 양쪽에 화살통을 차고 좌우로 말을 달려 쏘았다(동탁전: 旅力少比,雙帶兩鞬,左右馳射).
지력평가 불가물길을 막아 포위를 빠져나간 계책 외에는 계책 기록이 적다. 중간값에서 소폭 가산(동탁전).
정치30폐립 뒤 가혹한 형벌과 소전(小錢) 주조로 곡식이 한 섬에 수십만 전이 됐다고 기록된다(동탁전). 낮게 평가.
매력50진수 평: 이리처럼 잔인하고 포악하며 어질지 못함이 책이 생긴 이래 거의 없었다(狼戾賊忍). 호족들과는 소를 잡아 잔치하며 사귀었다는 기록은 있어 바닥값을 면한다.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동탁의 이동 경로

동탁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