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사망 208년 — 손권의 강하 정벌 때 성을 버리고 달아나다 추격병에게 사로잡힘(208). 처형 기록은 여몽전의 「사로잡힘」까지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6년 | 시상 | 강하태수 | 기록 |
| 208년 | 하구 | 강하태수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2~205년 | 유표 | 강하태수 | 불명 |
| 206년 | 유표 | 강하태수 | 기록 |
| 207년 | 유표 | 강하태수 | 불명 |
| 208년 | 유표 | 강하태수 | 기록 |
유표가 보낸 황조가 번·등 사이에서 손견을 막고 그의 군사가 현산에서 손견을 쏘아 죽인다.
정사 손견전: 초평 3년 원술이 손견에게 형주를 치게 하자 유표가 황조를 보내 번·등 사이에서 막게 했다. 손견이 깨고 한수를 건너 양양을 포위했으나 말 한 필로 현산을 지나다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에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현산 전투(손견 전사)
출전: 三國志 卷46 「爲祖軍士所射殺」
장수 등룡에게 수천 병력으로 시상에 들어가게 했다가 주유에게 추격당해 등룡이 사로잡힌다.
정사 주유전: 건안 11년 강하태수 황조가 장수 등룡에게 병 수천을 거느려 시상에 들어가게 하자 주유가 추격해 등룡을 생포해 오로 보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4 「遣將鄧龍將兵數千人入柴桑」
손권이 강하를 칠 때 몽충 둘로 면구를 막았다가 동습·능통에게 줄이 끊기고 선봉 진취가 여몽에게 죽자 성을 버리고 달아나다 사로잡힌다.
정사 동습전: 황조가 몽충 둘을 가로놓아 면구를 지키고 큰 줄에 돌을 매달아 닻으로 삼고 위에서 천 명이 쇠뇌를 쏘았으나 동습과 능통이 결사대로 뛰어들어 줄을 끊었다. 여몽전: 도독 진취가 죽자 황조는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추격병에게 사로잡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하구 전투(황조 토벌)
출전: 三國志 卷54 「祖聞就死,委城走」
정사 손책전: 원술이 죽은 뒤 옛 부하 장훈 등이 손책에게 가려 하자 여강태수 유훈이 가로채 그 군을 모두 잡았다. 손책은 거짓으로 유훈과 동맹을 맺고, 유훈이 예장 상료의 종민을 치러 나간 틈에 가벼운 군으로 밤낮 달려 여강(환성)을 습격해 빼앗았다. 유훈은 수백 명으로 조조에게 달아났다. 손책은 이어 사선에서 황조를 쳤다(오주전).
연의: 연의 29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2 | 손견을 번·등 사이에서 막아 그 군사가 손견을 현산에서 쏘아 죽였다(손견전). |
| 무력 | 50 | 무력으로 싸운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 |
| 지력 | 50 | 감녕이 「황조는 늙고 혼미가 심하며 재물과 곡식이 모자라고 좌우가 속이고 선박·전구가 폐해져 군에 법도가 없다」고 평했다(감녕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매력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황조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