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5년경(추정) — 생년 불명(165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08년 — 사망 연도는 정사에 기록이 없다. 마지막 기록이 208년(유종 옹립)이라 그 해까지만 표시한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8년 | 양양 | 유표 막하→유종 옹립 세력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9년 | 기타·재야 | (양양 출신, 출사 전·연대 불명) | 불명 |
| 190~207년 | 유표 | 유표 막하(처남) | 불명 |
| 208년 | 유표 | 유표 막하→유종 옹립 세력 | 기록 |
유표가 단기로 의성에 들어오자 괴량·괴월과 함께 계책을 짠다.
정사 유표전 주(전략): 유표가 형주에 처음 부임해 단기로 의성에 들어와 괴량·괴월·양양 사람 채모와 의논했다. 연도는 초평 원년(190)으로 둠(후한서 유표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6 주(戰略) 「襄陽人蔡瑁與謀」
괴월과 함께 연회에서 유비를 붙잡으려 했으나 유비가 변소를 핑계로 빠져나가 말을 타고 단계를 건넌다.
정사 선주전 주(구주춘추 주문 안에 《세어》 인용): 유비가 번성에 주둔할 때 괴월·채모가 연회를 틈타 유비를 잡으려 했고 유비가 눈치채 변소에 가는 척 달아났다. 연도는 번성 주둔기(201~207) 어느 해인지 본문에 없어 가운데 값 205로 둠.
연의: 연의 34회 — 연의 34회는 채모가 연회에서 유비를 죽이려 한 일로 크게 부풀린다. 정사에서는 세어 인용 한 줄이다.
출전: 三國志 卷32 주(九州春秋) 「蒯越蔡瑁欲因會取備備覺之」
유표 사후 장윤과 함께 유종 지지 세력이 되어 장남 유기를 강하태수로 내보낸다.
정사 유표전: 유표와 부인이 막내 유종을 후사로 삼으려 했고 채모·장윤이 지지 세력이 되어 장남 유기를 강하태수로 내보냈으며 무리가 유종을 받들었다.
연의: 연의 40회
출전: 三國志 卷06 본 「而蔡瑁張允爲之支黨乃出長子琦爲江夏太守衆遂奉琮爲嗣」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5 | 유표가 형주에 처음 올 때 꾀를 낸 사람으로 이름이 오르고 유표 군의 지지 세력이었다(유표전 주). 지휘 전공 기록은 없다. |
| 무력 | 평가 불가 | 개인 무용 기록 없음(유표전·선주전 주). |
| 지력 | 50 | 괴월과 함께 연회에서 유비를 제거하려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선주전 주 세어). 사실 판단은 하지 않았다. |
| 정치 | 55 | 유표 사후 유종을 후사로 세우는 데 장윤과 함께 지지 세력이 되었다(유표전). |
| 매력 | 50 | 후한서는 유표의 처남으로 총애받았다고 적었다(후한서 유표전). 인망 기록은 없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채모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