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궁(陳宮)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여포출생 생년 불명사망 198년기록 연도 2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8년 — 건안 3년(198) 12월 하비에서 부하들에게 묶여 조조에게 넘겨져 처형(여포전).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94년복양동군 주둔 → 여포 영입기록
195년거야여포 휘하추정
196년하비여포 휘하(하비)추정
197년하비여포 휘하(하비)추정
198년하비여포 휘하(하비에서 포로)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84~193년기타·재야(동군 출신, 조조 휘하로 알려짐, 연대 불명)불명
194년여포동군 주둔 → 여포 영입기록
195년여포여포 휘하추정
196~197년여포여포 휘하(하비)추정
198년여포여포 휘하(하비에서 포로)기록

나온 사건·전투

194년 · 동군 주둔 → 여포 영입

조조가 서주를 치는 사이 장막을 설득해 여포를 연주목으로 맞아들이고 복양을 차지한다.

정사 장막전: 진궁이 장막에게 '지금 주군은 동정 중이라 빈집이다. 여포를 불러 연주를 함께 다스리자'고 설득했다. 장막이 따라 여포를 연주목으로 모셨다.

연의: 연의 11~12회 — 연의 11~12회는 진궁이 조조를 버리고 여포를 맞는 대목을 극화한다.

관련: 복양 전투

출전: 三國志 卷07 「今州軍東征,其處空虛」 / 三國志 卷07 「太祖初使宮將兵留屯東郡」

198년 · 여포 휘하(하비에서 포로) · 대패

조조가 하비를 포위하자 항복하려는 여포를 막다가, 부하 후성·송헌·위속에게 묶여 조조에게 넘겨진다. 조조가 노모를 봉양하고 딸을 시집보낸다.

정사 여포전: 여포가 항복하려 하자 진궁 등은 죄가 깊어 계획을 막았다. 3개월 포위 끝에 후성·송헌·위속이 진궁을 묶어 항복했다. 조조가 진궁의 노모와 딸을 돌보았다.

연의: 연의 19회 — 연의 19회가 백문루에서 진궁이 끝까지 꺾이지 않는 모습을 극화한다.

관련: 하비 전투, 여포의 최후 · 하비 전투

출전: 三國志 卷07 「陳宮等自以負罪深,沮其計」 / 三國志 卷07 「縛陳宮,將其衆降」 / 三國志 卷07 「太祖召養其母終其身,嫁其女」

같이 이름이 나오는 다른 사건·전투

195년 · 거야 전투

정사 무제기: 195년 봄 조조가 정도를 습격했고,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이봉이 거야에 주둔하자 조조가 공격했다. 여포가 구원했으나 설란이 패해 여포는 달아났고, 조조는 설란 등을 벴다. 여포가 동민에서 진궁과 1만여 명을 이끌고 다시 오자 조조는 병력이 적어 매복을 두고 기병을 풀어 크게 이겼다. 여포는 밤에 달아났고 조조가 정도를 다시 얻으니 여포는 동쪽 유비에게로 갔다.

연의: 연의 12회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6조조의 장수로 동군에 주둔하다 장막과 짜고 여포를 연주목으로 맞아 군현 대부분을 돌렸다(장막전).
무력50무예 서술은 없다(여포전).
지력88'지금 주군은 동쪽으로 정벌 중이라 연주가 비어 있다'며 여포를 끌어들이는 계책을 내놓았다(장막전).
정치평가 불가정사 본문에 직접 근거가 적어 기본값 50 부근으로 둔다.
매력65후에 조조가 '노모를 살리고 싶은가' 하자 '효로 천하를 다스리는 이는 남의 친족을 끊지 않는다'고 답했고 조조는 노모를 끝까지 봉양하고 딸을 시집보냈다(여포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진궁의 이동 경로

여포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