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8년 — 건안 3년(198) 12월 하비에서 여포·진궁과 함께 처형되어 수급이 허로 보내짐(여포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8년 | 소패 · 다른 후보: 하비 | 여포 장수(소패 → 하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97년 | 여포 | (여포 휘하, 연대 불명) | 불명 |
| 198년 | 여포 | 여포 장수(소패 → 하비) | 기록 |
여포가 다시 원술 편에 서자 소패의 유비를 쳐 깨뜨리고, 구원하러 온 하후돈도 물리친다. 하비에서 사로잡혀 처형된다.
정사 여포전: 건안 3년 여포가 원술 편으로 돌아 고순을 보내 소패의 유비를 쳐 깼다. 조조가 하후돈을 보냈으나 고순에게 패했다. 하비 함락 뒤 여포와 진궁, 고순 등 수급이 허로 보내졌다.
연의: 연의 18~19회 — 연의 18~19회가 고순과 하후돈의 대결과 하비의 마지막을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07 「遣高順攻劉備於沛,破之」 / 三國志 卷07 「布與宮、順等皆梟首送許」
정사 무제기·여포전: 장막·진궁이 조조를 배반해 여포를 맞아 연주목으로 세웠다. 군현이 호응했으나 견성·동아·범현은 순욱·정욱이 지켜냈다. 조조가 서주에서 돌아와 복양에서 싸웠으나 불리했고 백여 일 대치했다. 조조는 여포의 기병이 청주병을 먼저 때리자 진이 흐트러지고 불길 속에서 말에서 떨어져 왼손바닥을 데었다. 그해 메뚜기 떼가 일어 곡식이 모자라 양쪽이 군을 물렸다.
연의: 연의 11~12회
정사 여포전·무제기: 198년 여포가 다시 원술을 위해 고순을 보내 소패의 유비를 치게 했다. 조조가 하후돈을 보내 구원했으나 고순에게 패했고 유비도 고순에게 패했다. 이 일로 9월 조조가 직접 여포를 정벌했다. 고순은 영문에서 정예 700여 명을 이끌어 함진영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영웅기에 있다.
연의: 연의 14회
정사 무제기·여포전: 198년 10월 조조가 팽성을 도륙하고 하비에 이르렀다. 여포가 기병으로 맞섰으나 크게 패했고 성안에 틀어박혔다. 조조는 오래 싸워 지쳐 물러나려 했으나 순유·곽가의 계책으로 사수·기수를 터 성을 물에 잠겼고, 한 달 남짓 뒤 송헌·위속 등이 진궁을 잡아 성을 바쳤다. 여포는 백문루에서 사로잡혔고 조조는 그를 죽였다.
연의: 연의 19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0 | 여포의 장수로 소패에서 유비를 깨고, 구원 온 하후돈의 군도 물리쳤다(여포전: 太祖遣夏侯惇救備,爲順所敗). |
| 무력 | 74 | 하후돈 군을 패퇴시킨 전과가 있다(여포전). |
| 지력 | 평가 불가 | 정사 본문에 직접 근거가 적어 기본값 50 부근으로 둔다.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사 본문에 직접 근거가 적어 기본값 50 부근으로 둔다. |
| 매력 | 평가 불가 | 정사 본문에 직접 근거가 적어 기본값 50 부근으로 둔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고순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