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194년 — 흥평 원년(194), 등창(癰疽)이 등에 번져 성도에서 사망(유언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88년 | 면죽 | 감군사자·익주목 | 기록 |
| 189년 | 면죽 | 익주목(면죽) | 기록 |
| 190년 | 면죽 | 익주목(면죽) | 기록 |
| 191년 | 면죽 | 익주목(면죽) | 기록 |
| 192년 | 면죽 | 익주목(면죽 → 성도) | 추정 |
| 193년 | 면죽 | 익주목(면죽 → 성도) | 추정 |
| 194년 | 성도 | 익주목(성도에서 사망)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7년 | 후한 조정 | 낙양령·기주자사·남양태수·종정·태상(연대 불명) | 불명 |
| 188년 | 유장·익주 | 감군사자·익주목 | 기록 |
| 189~191년 | 유장·익주 | 익주목(면죽) | 기록 |
| 192~193년 | 유장·익주 | 익주목(면죽 → 성도) | 추정 |
| 194년 | 유장·익주 | 익주목(성도에서 사망) | 기록 |
익주자사 극검의 가렴이 심하고 다른 주 자사가 잇따라 살해되는 틈에 감군사자로 익주목이 되어 촉에 들어간다.
정사 유언전: 유언이 자사·태수의 부패를 막기 위해 청렴한 중신을 목(牧)으로 세우자 건의했다. 동부가 익주의 천자기(天子氣)를 말하자 뜻이 익주로 기울었고, 극검의 가렴이 심한 틈에 감군사자·익주목 양성후가 되어 극검을 잡으러 갔다.
연의: 연의 1회 — 연의 1회에는 유주태수 유언이 도적 토벌을 위해 모병하는 대목으로 나온다(익주목 부임은 연의가 길게 다루지 않는다).
출전: 三國志 卷31 「出為監軍使者,領益州牧,封陽城侯」
마상·조지가 면죽에서 황건을 칭해 3군이 파괴된 뒤, 유언은 치소를 면죽으로 옮기고 흩어진 백성을 어루만진다.
정사 유언전: 마상·조지 등이 면죽현에서 황건을 자칭, 며칠 만에 수천이 모였다가 달아났다. 가룡이 군졸을 모아 마상 등을 격파한 뒤 유언을 맞이했고, 유언은 치소를 면죽으로 옮겼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1 「焉徙治綿竹,撫納離叛,務行寬惠,陰圖異計」
장로를 독의사마로 삼아 한중에 보내 곡각 길을 끊고 한나라 사신을 해치게 한다. 또 익주 호족 왕함·이권 등 십여 명을 죽여 위엄을 세운다.
정사 유언전: 장로의 어머니가 귀도로 유언의 집에 드나들었으므로 장로를 독의사마로 삼아 한중에 두어 길을 끊게 했다. 미적(米賊)이 길을 끊어 통하지 못한다고 상서했다. 다른 일을 핑계로 호족 왕함·이권 등 10여 명을 죽였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서술 순서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1 「故焉遣魯為督義司馬,住漢中,斷絕谷閣,殺害漢使」 / 三國志 卷31 「又託他事殺州中豪強王咸、李權等十馀人,以立威刑」
아들 범이 마등과 장안을 칠 모의를 하다 실패해 죽고, 하늘의 불로 성이 타고 수레가 모두 소실된다. 성도로 치소를 옮긴 뒤 등창으로 죽는다.
정사 유언전: 마등이 미에서 반란하자 유언과 범이 마등과 짜고 장안을 치려 했다. 범의 계획이 새서 괴리로 달아났고 마등이 패했다. 범은 곧 죽고 탄도 형을 받았다. 불에 성이 타서 수레도 소진되자 유언은 치소를 성도로 옮기고 아들을 잃은 아픔과 재앙으로 흥평 원년에 등창이 나서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31 「焉及範與騰通謀,引兵襲長安」 / 三國志 卷31 「癰疽發背而卒」
정사 무제기·관우전: 200년 2월 원소가 안량을 보내 백마에서 동군태수 유연을 포위하자, 순유의 계책으로 조조가 연진에서 도하하는 척해 원소의 군을 서쪽으로 끌어낸 다음, 가벼운 군으로 백마를 급습했다. 장료·관우가 선봉으로 올라 안량을 베고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관우전은 관우가 만군 속에서 안량의 머리를 베어 돌아왔다고 전한다.
연의: 연의 25~26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동주병과 기병 병력은 직접 거느린 기록이 없고, 아들 범·탄이 장안에서 마등과 내응하려다 실패해 처형됐다(유언전). |
| 무력 | 50 | 무예 기록이 없다. 학자풍으로 양성산에서 가르쳤다(積學教授)(유언전). |
| 지력 | 61 | 자사 대신 목(牧)을 세우자는 건의로 익주에 들어갔다. 그러나 수레 1천여 대를 만드는 등 천자 자리를 엿보는 행동은 어리석다고 진수가 평했다(유언전). |
| 정치 | 67 | 마상·조지의 난으로 파괴된 3군을 평정하고 '관대함'을 쓰면서 속으로는 다른 계획을 품었다(유언전). |
| 매력 | 58 | 동주(東州)인과 지역 호족에 대한 처리는 호족 10여 명을 죽여 위엄을 세웠다는 서술이 있다(유언전). 낮게 둔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유언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