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출생 연도 기록 없음. 열전은 장이를 아버지처럼 섬겼다고 적어 장이보다 어렸다는 정도만 말한다
사망 -204년 — 한 3년(-204) — 정형 전투 뒤 저수 가에서 한신·장이의 군에 베임. 전문 「斬陳餘泜水上」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9년 | 진 | 진승 휘하 좌교위 | 기록 |
| -208년 | 한단 | 조 대장군 | 기록 |
| -207년 | 거록 | 조 대장군 | 기록 |
| -206년 | 남피 | 남피 봉후→장이 습격 | 기록 |
| -205년 | 대 | 대왕·조 보좌 | 기록 |
| -204년 | 정형 | 대왕·조 보좌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9년 | 초 | 진승 휘하 좌교위 | 기록 |
| -208~-207년 | 조 | 조 대장군 | 기록 |
| -206년 | 조 | 남피 봉후→장이 습격 | 기록 |
| -205~-204년 | 조 | 대왕·조 보좌 | 기록 |
진승이 진에서 왕이 되려 하자 장이와 함께 왕이 되지 말고 서쪽으로 군을 몰아 육국 후손을 세우라고 간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진승이 진에 들어 군사 수만이 되자 장이·진여가 찾아가 뵈었다. 진의 호걸들이 진승에게 왕이 되라 하자, 두 사람은 "왕이 되지 마시고 급히 서쪽으로 가 육국의 후손을 세워 스스로 편을 만들라"고 했으나 진승은 듣지 않고 왕이 되었다.
출전: 史記 卷089 「願將軍毋王急引兵而西遣人立六國後自爲樹黨爲秦益敵也」 / 史記 卷089 「陳渉不聽遂立爲王」
하북 공략을 청해 무신 아래 좌우교위가 되어 졸 3천을 받고 조 땅으로 북상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진여가 진왕에게 하북을 거두지 못했으니 기병을 보내 조 땅을 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진왕이 무신을 장군, 소소를 호군으로 삼고 장이·진여를 좌우교위로 삼아 졸 3천을 주어 북으로 조 땅을 공략하게 했다.
출전: 史記 卷089 「願請奇兵北略趙地」 / 史記 卷089 「以張耳陳餘爲左右校尉予卒三千人北略趙地」
무신이 조 땅 수십 성을 얻자 장이와 함께 왕이 되라 권하고, 무신이 조왕, 진여는 대장군이 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진여와 장이는 무신에게 진왕이 육국 후손을 세울 뜻이 없다며 조왕이 되라고 권했다. 무신이 따라 조왕이 되고 진여는 대장군, 장이는 우승상, 소소는 좌승상이 되었다.
출전: 史記 卷089 「乃説武臣曰陳王起蘄至陳而王非必立六國後」 / 史記 卷089 「武臣乃聽之遂立爲趙王以陳餘爲大將軍張耳爲右丞相邵騷爲左丞相」
이량이 무신을 죽이자 흩어진 병사를 모아 조헐을 조왕으로 세우고 신도에 두며 이량을 깨뜨린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이량이 한단을 습격해 무신과 소소를 죽이자 진여와 장이는 도망했다가 병사를 거두어 수만이 되었다. 조헐을 찾아 조왕으로 세워 신도에 두었고, 이량이 진여를 치다 패해 장함에게 달아났다.
출전: 史記 卷089 「乃求得趙歇立爲趙王居信都」 / 史記 卷089 「陳餘敗李良」
거록이 왕리에게 포위되자 북쪽에서 군을 모았으나 병력이 적다며 구원하지 않고, 장염·진택이 이끈 5천이 전멸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장함이 거록을 포위하자 진여는 북쪽에서 상산 병사 수만을 모아 거록 북쪽에 주둔했다. 장이가 여러 차례 부르고 장염·진택을 보내 책망했으나 진여는 병력이 적어 진군하지 않았고, 5천을 보내 장염·진택이 먼저 진군을 시험하게 했으나 모두 전몰했다.
관련: 거록 전투
출전: 史記 卷089 「陳餘自度兵少不敵秦不敢前」 / 史記 卷089 「乃使五千人令張黶陳澤先嘗秦軍至皆沒」
거록이 풀린 뒤 장이의 책망에 인수를 풀어 주고, 장이가 받자 하상으로 물러나 둘의 사이가 갈라진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항우가 장함의 용도를 끊고 진군을 깨 거록이 풀린 뒤 장이가 진여를 질책하자 진여는 인수를 풀어 장이에게 주었다. 장이는 주저하다 받았고 진여는 수백 명과 하상의 못으로 가 어렵을 했다. 이로써 둘 사이에 틈이 생겼다.
관련: 거록 전투
출전: 史記 卷089 「乃脱解印綬推予張耳」 / 史記 卷089 「由此陳餘張耳遂有卻」
항우가 장이를 상산왕으로 봉하고 진여에게 남피 주변 세 현만 주자 앙심을 품는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한 원년 2월 항우가 제후왕을 세울 때 장이를 상산왕으로 삼았고, 진여는 입관에 따르지 않았다며 남피 곁 세 현으로 봉하고 조왕 헐을 대로 옮겼다.
출전: 史記 卷089 「即以南皮旁三縣以封之而徙趙王歇王代」 / 史記 卷089 「張耳王餘獨侯此項羽不平」
전영의 병력을 빌려 상산왕 장이를 습격해 내쫓는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제왕 전영이 초를 배반하자 진여는 하열을 보내 전영에게 병사를 빌려 달라 청했다. 전영이 병사를 보내자 진여가 세 현의 병사를 모두 일으켜 상산왕 장이를 습격했고 장이는 패해 한에 갔다.
출전: 史記 卷089 「陳餘因悉三縣兵襲常山王張耳」 / 史記 卷089 「張耳敗走」
대에서 조왕 헐을 맞아 다시 조왕으로 세우고 대왕이 되나, 약한 조왕을 보좌하느라 하열을 상국으로 대를 지키게 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진여는 장이를 깨고 조 땅을 모두 거두어 대에서 조왕 헐을 맞아 다시 조왕으로 세웠다. 조왕은 은덕을 느껴 진여를 대왕으로 삼았으나, 진여는 조왕이 약하고 나라가 막 안정되었다며 봉지에 가지 않고 조왕을 보좌하고 하열을 상국으로 대를 지키게 했다.
출전: 史記 卷089 「迎趙王於代復爲趙王趙王德陳餘立以爲代王」 / 史記 卷089 「而使夏説以相國守代」
한왕이 장이를 죽이면 따르겠다고 해 장이를 닮은 자의 머리를 받았으나, 팽성 패배 뒤 장이가 살아 있음을 알고 한을 배반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한 2년 한왕이 초를 치러 조에 함께 가자 했을 때 진여는 장이를 죽이면 따르겠다고 했다. 한왕이 장이를 닮은 자를 베어 머리를 보냈고 진여가 병사를 보내 한을 도왔다. 한이 팽성 서쪽에서 패하자 진여는 장이가 죽지 않았음을 알고 한을 배반했다.
출전: 史記 卷089 「漢殺張耳乃從」 / 史記 卷089 「陳餘亦復覺張耳不死即背漢」
한신·장이의 군에 정형에서 패하고 저수 가에서 목이 베인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한 3년 한신이 위 땅을 평정한 뒤 장이와 함께 정형에서 조를 깼고 저수 가에서 진여를 베었으며 조왕 헐은 양국에서 추격해 죽였다.
관련: 정형 전투(배수진)
출전: 史記 卷089 「遣張耳與韓信撃破趙井陘斬陳餘泜水上」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5 | 수만 군을 모았으나 거록에서 병력이 적다며 진군하지 못했다(장이진여열전). |
| 무력 | 평가 불가 | 무력 기록은 없다. |
| 지력 | 66 | 진승에게 하북 공략을 건의하고 무신에게 왕이 되라고 권했다(장이진여열전). |
| 정치 | 59 | 조왕을 세우고 대왕이 되었으나 봉지에 가지 않고 상국으로 대를 지키게 했다(장이진여열전). |
| 매력 | 58 | 장이와 문경지교를 맺었으나 거록의 일로 갈라섰다(장이진여열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진여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