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張耳)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조출생 생년 불명사망 -202년기록 연도 8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생년 원문에 없음. 대량 사람, 젊어 위 공자 무기(신릉군)의 문객(「及魏公子毋忌爲客」)

사망 -202년 — 한 5년(-202) 사망, 시호 경왕(「漢五年張耳薨謚爲景王」, 장이진여열전). 아들 장오가 조왕을 이었다.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9년진(陳)조 우승상기록
-208년신도(양국)조 승상(조왕 헐 옹립)기록
-207년거록조 승상(조왕 헐 옹립)기록
-206년신도(양국)상산왕→(한에 의탁)기록
-205년팽성(한에 의탁)기록
-204년정형한 소속(한신과 함께 조 정벌)기록
-203년신도(양국)조왕기록
-202년신도(양국)조왕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년조조 우승상기록
-208~-207년조조 승상(조왕 헐 옹립)기록
-206년조상산왕→(한에 의탁)기록
-205년한(한에 의탁)기록
-204년한한 소속(한신과 함께 조 정벌)기록
-203~-202년조조왕기록

나온 사건·전투

-209년 · 조 우승상

진승이 진에 입성하자 진여와 함께 찾아가 왕을 칭하지 말고 육국의 후손을 세워 서쪽 함양으로 나가라 권하나 진승은 듣지 않고 초왕이 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장이·진여가 진승을 알현했다. 진의 호걸들이 왕이 되라 권했으나 두 사람은 「毋王」, 서쪽으로 진군하고 육국 후손을 세워 당을 만들자 했다. 진승은 듣지 않고 왕이 되었다.

출전: 史記 卷089 「張耳陳餘上謁陳渉」 / 史記 卷089 「願將軍毋王急引兵而西遣人立六國後」

-209년 · 조 우승상

진승이 무신을 장군으로 삼고 장이·진여를 좌우교위로 삼아 병력 3천으로 조 땅을 평정하게 한다. 무신은 호걸들을 설득해 수만을 얻고 조 10성을 얻는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진여의 청으로 진승이 무신을 장군, 장이·진여를 좌우교위로 삼고 군사 3천으로 북쪽 조를 공략하게 했다. 백마에서 황하를 건너 수만을 모아 무신을 무신군이라 부르며 조 10성을 얻었고, 한단에서 주장이 희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전: 史記 卷089 「於是陳王以故所善陳人武臣爲將軍邵騷爲護軍以張耳陳餘爲左右校尉予卒三千人北略趙地」 / 史記 卷089 「乃行收兵得數萬人號武臣爲武信君下趙十城」

-209년 · 조 우승상

진승의 참소와 주살을 겁낸 두 사람이 무신에게 왕을 칭하라 권해 무신이 조왕이 되고, 진여가 대장군, 장이가 우승상이 된다. 이어 진승에게 서쪽으로 군을 내지 말고 연·대·하내를 취하자고 설득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두 사람이 무신에게 진승이 참언을 듣는다며 왕이 되라 설득했다. 무신이 조왕이 되어 진여를 대장군, 장이를 우승상으로 삼았다. 진승이 사신으로 축하하며 서진을 재촉하자 두 사람은 서쪽으로 군을 내지 말고 북쪽 연·대와 남쪽 하내를 거두라 권했다.

출전: 史記 卷089 「武臣乃聽之遂立爲趙王以陳餘爲大將軍張耳爲右丞相邵騷爲左丞相」 / 史記 卷089 「願王毋西兵北徇燕代南收河内以自廣」

-208년 · 조 승상(조왕 헐 옹립)

이량이 변심해 한단을 습격해 무신·소소를 죽이자 장이·진여는 겨우 빠져나와 수만을 모으고, 조의 후손 헐을 찾아 조왕으로 세우고 신도에 자리잡는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이량이 한단을 습격해 무신·소소를 죽였다. 조 사람이 두 사람의 귀·눈이 되어 장이·진여가 빠져나가 수만을 모았고, 객의 말대로 조헐을 찾아 조왕으로 세워 신도에 도읍했다.

출전: 史記 卷089 「邯鄲不知竟殺武臣邵騷」 / 史記 卷089 「乃求得趙歇立爲趙王居信都」

-207년 · 조 승상(조왕 헐 옹립)

장함이 한단을 허물자 조왕 헐과 함께 거록성으로 들어가 왕리에게 포위된다. 성 밖의 진여가 구원하지 않자 장이는 장염·진택을 보내 책망하나 수개월 동안 진여는 움직이지 않고, 항우가 왕리를 깨뜨리고서야 포위가 풀린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장함이 한단을 허물자 장이와 조왕 헐이 거록성에 들어갔고 왕리가 포위했다. 진여는 북쪽에 수만을 두고도 병력이 적다며 구원하지 않았고 장이가 노해 장염·진택을 보내 책망했으나 5천으로 시험하다 전몰했다. 항우가 장함의 용도를 끊고 왕리를 사로잡아 포위가 풀렸으며 「卒存鉅鹿者楚力也」.

관련: 거록 전투

출전: 史記 卷089 「張耳與趙王歇走入鉅鹿城王離圍之」 / 史記 卷089 「鉅鹿城中食盡兵少張耳數使人召前陳餘陳餘自度兵少不敵秦不敢前」 / 史記 卷089 「卒存鉅鹿者楚力也」

-207년 · 조 승상(조왕 헐 옹립)

포위가 풀린 뒤 장이가 진여의 구원 거부를 책망하자 진여가 장군 인수를 내놓았고, 장이는 객의 권유로 이를 받아 진여의 군을 거둔다. 둘 사이가 이때부터 갈라진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장이와 진여가 만나 장이가 구원하지 않은 일과 장염·진택의 행방을 따졌다. 진여는 화가 나 인수를 장이에게 건넸고, 장이는 객의 말대로 인수를 차고 진여의 휘하를 거두었다. 진여는 하수가 늪에서 어렵을 하며 지냈다.

관련: 거록 전투

출전: 史記 卷089 「張耳乃佩其印收其麾下」 / 史記 卷089 「由此陳餘張耳遂有卻」

-206년 · 상산왕→(한에 의탁)

한 원년 2월, 항우가 제후왕을 세울 때 평소 이름이 알려진 장이를 상산왕으로 삼아 신도(양국)를 다스리게 한다. 조왕 헐은 대로 옮겨진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한 원년 2월 항우가 제후를 세울 때 장이가 교유가 넓고 주변이 말을 해 주어 항우도 평소 현명하다 들은 터라 조를 나눠 장이를 상산왕으로 삼고 신도에서 다스리게 했다. 신도는 양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진여는 남피 곁 세 현에 봉해지고 조왕 헐은 대왕으로 옮겨졌다.

출전: 史記 卷089 「漢元年二月項羽立諸侯王張耳雅游人多爲之言項羽亦素數聞張耳賢乃分趙立張耳爲常山王治信都」

-206년 · 상산왕→(한에 의탁)

진여가 제왕 전영의 병력을 얻어 세 현 병력으로 상산왕을 습격하자 패주해 한왕에게 의탁한다. 한왕은 삼진을 평정하고 폐구에서 장함을 포위하던 중 후하게 대우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진여는 전영의 군과 세 현 병력으로 장이를 습격했고, 장이는 갈 곳이 없어 한왕과의 옛 정을 생각해 한으로 갔다. 한왕은 삼진을 평정하고 폐구에서 장함을 에워싸던 중이어서 장이를 후히 맞았다. 연대는 -206 말로 환산.

출전: 史記 卷089 「陳餘因悉三縣兵襲常山王張耳張耳敗走」 / 史記 卷089 「故耳走漢」 / 史記 卷089 「張耳謁漢王漢王厚遇之」

-205년 · (한에 의탁)

한 2년, 한왕이 초를 치려 조에 군을 청하자 진여가 「한이 장이를 죽이면 따르겠다」 하여, 한왕이 장이와 닮은 사람의 목을 보내 진여가 병력을 보태 준다. 팽성에서 한이 패하고 장이가 살아 있음을 알자 진여는 한을 배반한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한 2년 한왕이 동쪽으로 초를 치며 조에 같이 하자 했다. 진여는 「漢殺張耳乃從」이라 했고 한왕은 장이를 닮은 사람을 베어 머리를 보냈다. 진여가 병력을 보냈다가 팽성 서쪽에서 한이 패하고 장이가 죽지 않았음을 알고 곧 한을 배반했다.

관련: 팽성 전투

출전: 史記 卷089 「漢二年東撃楚使使告趙欲與倶陳餘曰漢殺張耳乃從」 / 史記 卷089 「於是漢王求人類張耳者斬之持其頭遺陳餘」 / 史記 卷089 「漢之敗於彭城西陳餘亦復覺張耳不死即背漢」

-205년 · (한에 의탁)

위 정벌 뒤 한왕이 장이를 한신과 함께 동으로 보내 조·대를 치게 한다. 후 9월, 대군을 깨고 알여에서 하열을 사로잡는다.

정사 회음후열전: 한신이 위를 평정하자 한왕이 장이를 한신과 함께 동북으로 보내 조·대를 치게 했다. 후 9월 대군을 깼다.

관련: 안읍 전투(위표 정벌)

출전: 史記 卷092 「漢王遣張耳與信俱引兵東北擊趙代」

-204년 · 한 소속(한신과 함께 조 정벌)

한 3년, 한신과 함께 정형에서 조를 깨고 진여를 지수 가에서 베고 조왕 헐을 양국에서 추격해 죽인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한 3년 한신이 위를 평정하고 장이를 한신과 함께 정형에서 조를 깨게 했다. 진여는 지수 위에서 참수되었고 조왕 헐은 양국까지 쫓겨 죽었다.

관련: 정형 전투(배수진)

출전: 史記 卷089 「漢三年韓信已定魏地遣張耳與韓信撃破趙井陘斬陳餘泜水上追殺趙王歇襄國」

-203년 · 조왕

한이 장이를 조왕으로 세운다. (본기는 정형 전투 이듬해, 회음후열전은 한신이 청해 곧 세운 것으로 적어 연도가 갈린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漢立張耳爲趙王」. 고조본기는 「其明年立張耳為趙王」으로 정형 이듬해로 적는다. 회음후열전은 한신이 조를 평정한 뒤 곧 장이를 조왕으로 세우도록 청해 허락받았다고 적는다.

출전: 史記 卷089 「漢立張耳爲趙王」 / 史記 卷008 「其明年立張耳為趙王」

-202년 · 조왕

한 5년 사망, 시호 경왕. 아들 장오가 조왕을 잇는다.

정사 장이진여열전: 한 5년 장이가 죽어 경왕이라 시호했고 아들 장오가 조왕을 이었다. 고조의 맏딸 노원공주가 장오의 왕후가 되었다.

출전: 史記 卷089 「漢五年張耳薨謚爲景王子敖嗣立爲趙王」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62무신과 함께 3천으로 조의 수십 성을 얻었고(장이진여열전), 한신과 함께 정형에서 조를 격파했다.
무력평가 불가무용 기록은 없다.
지력71진승에게 「毋王」·육국 후손 옹립을 건의했고, 이어 무신에게 「毋西兵」 북쪽 연·대로 나아가 자립하자 권했다(장이진여열전).
정치77외황령으로 이름이 높았고 조에서 우승상·상산왕·조왕을 지냈다(장이진여열전).
매력85문객이 천 리에서 찾아왔고 조 사람 다수가 장이·진여의 귀·눈이 되어 주었으며, 태사공은 「世傳所稱賢者」라 평했다(장이진여열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이의 이동 경로

조 소속 다른 장수